세계 교회사!!

니케아 회의 시대 (313-590)

하나님아들 2020. 1. 6. 19:33

 

   니케아 회의 시대 (313-590)

 


  이 시대는 A.D.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즉위에서부터 590년  그레고리
우스1세의 즉위까지를 말한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604년 그레고리우스  1세
가 죽은때까지를 경계로 삼는 사람도 있다. 그는 라틴 교부의 마지막  사람
이며 첫 교황이다.

 

   1. 서 론

 

  1) 기간
  313-590 년 (최초의 세계적인 회합인 니케아 회의가 있었으므로 이렇게
부름)

  2) 교리의 논쟁
  박해 중에는 신앙 뿐이었다. 그러나 박해가 끝나면서 교리 문제가 등장하

고신학자들이 많이 나왔으며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아타나시우스와 아우구
스티누스 (어거스틴)이다.

  3) 세계 대회
  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 대회가 소집되었고 근본 교리가
제정되었다. 교회 정치 분야에는 암브로시우스,  설교가로는  크리소스토모
스,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등이 유명하다.

  4) 교권 증진
  정치력이 쇠해 갈 수록  복음 운동이 일어났다. 교회 지도자의 세력이 점
점강대해졌고,로마 교황 세력이 강대해져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관직까지
소유하였다.

  5) 수도원의 발전
  관직을 지킬 수록 교회는 속화되었고 여기에 반작용으로 금욕주의.둔세주
의가 성행하여 수도원이 생겼다.


 

      2. 콘스탄티누스 대제 (Constantinus)

 

  1) 콘스탄티누스 대제 약사

    a. 288나이사스에서 출생, 부는 서로마 황제 클로루스(독신자),모는
       헬레나.
    b. 서방의 부제 클로루스(Constantius Chlorus)의 아들고 용맹하고
       싸움잘함.
    c. 왕 사망 후 서방의 황제 입후보자가 6명이었으나 막센티우
       스(Maxentius와 싸워 이김.
    d. 동방의 황제리키니우스의 누이를 황후로 삼고 두 황제가 밀리노
       칙령을 발표하여 기독교를 공인함.
    e. 동방 황제게 이교를 도와줌으로 싸워서 로마 제국을 통일함.
    f. 337년 65세때 유세비우스에게 세례받고, 오순절날 사망.


  2) 입신 (입신) 동기
    a. 막센티우스와 로마 근교 밀위아 다리에서 전쟁할 때 태양 위에 십
       자가와<이것으로 이기라>는 글자를 모든 군사들이 봄.
    b. 그날 밤 꿈에 예수가 나타나 십자가를 보이고 이것으로 기장을 삼
       으라하므로 그대로 하여 승리함.
    c. 믿은 후에도 죄인이라고 세례받지 않다가 죽음에 이르러 세례받음.

  3) 업적

    a. 교회 보호
     가. 외부적 감독이라 자칭하고 궁중에서 연설함.
     나. 유세비우스를 궁중에 들이고 우대함.
     다. 이단을 멸하고 교회 통일을 도모.

    b. 법률 개정
     가. 고래(고래) 풍속 개량.
       (1) 십자가형 폐지
       (2) 검투 폐지
       (3) 축첩 제도 엄벌,이혼에 제한을 둠.
       (4) 여자에게 토지 이외에 소유권 인정.
       (5) 죄인 이마에 화인(화인) 금함.

     나. 교회의 법률을 국가가 공인
       (1) 교인간의 쟁투에 대한 교직자의 판결은 법률상 유효.
       (2) 대의회 결의는 국가의 법률이 됨.
       (3) 교회의 법률에 대한 불가침
       (4) 사죄,감형 요구권을 교직자에게 부여함.

     다. 기독교를 위한 특별 법령
       (1) 주일 휴업(법정,군대)
       (2) 교직자는 세금과 병역 의무 면제.
       (3) 박해시 몰수한 재산 반환
       (4) 교회 재산 관리법 제정, 기부금 제도 공인.
       (5) 타종교의 잔인성과 불결한 행동을 금함.

    c. 천도
      가. 332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
      나. 이유
       (1) 야만인과 페르시아인에 제어 목적
       (2) 새로운 기독교 수도 형성 목적
       (3) 자기 이름을 후세에 남기려고

    d. 결정...왕위를 빼앗으려고 한다고 처,자,조카까지 살해.

    e. 후계자
      가. 세 왕자에게 제국을 분할
 (1) 장남...콘스탄티누스 (Constantinus)
 (2) 차남...콘스탄스(Constans)
 (3) 삼남...콘스탄티우스(Constantius)
      나. 차남을 형을 죽이고 동생과 함께 나라를 차지함.
      다. 차남은 10년 후 자객에게 암살당함.
      라. 천하는 삼남에게 통일됨.

   <요약>
     *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업적
      (1) 우상 숭배 금지
      (2) 이교 전당을 몰수하여 교회에 줌(3) 관직은 기독교 신자라야 함.
      (4) 크게 부패하기 전에 일대 반동이 일어남.


 

    3. 니케아 (Nicaea)회의

  1) 시일과 소집자
     325년 5월-6월, 콘스탄티누스 황제

  2) 소집 방법
  (1) 각지 감독에게 안내장을 보냄.
  (2) 각 감독은 장로 2명,수행원 3명의 대동을 허락함.
  (3) 관용 주창 편의를 보아주고 체재비는 국고에서 부담.

  3) 소집 동기
  (1) 부활절 일자 문제(동방은 유월절을 지키고, 서방은 주일을 중시
      했다)
  (2) 아리우스 (Arius) 설 때문에 교회가 분열될까 염려하여


  a.아리우스
      (Arius)
       가. 리비아인 (현,트리포리)
       나. 루키아누스(Lucianus-312년경 죽음)에게 사사 (루키아누스는
    당대의 일류 학자로 성경 해석에 통달하였음).
       다. 알렉산드리아 장로로서 큰 세력을 가지고 있음.
       라. 키가 크고, 몸은 약하나 말이 명괘한 이론가.
       마. 열정적이며 금욕 생활을 통해 추종자가 많음.

  b. 아리우스의 학설 (그리스도관)
       가. 그리스도는 피조물이다. 참 신이 아니고, 같은 성품,동격도
    아니며 오직 은혜를 주어서 세계 창조의 중개가 그리스도의
    본분이다.
       나. 인성이 없다.
       다. 악을 택하셨으면 악행을 할 수 있었다. 선행함으로 상급을 얻
    는다.

  c. 사건의 발단
       가. 감독 알렉산드리로스 삼일신의 현현을 가르칠 때 장로인 아리
    우스가 이를 공격함.
       나. 320년 알렉산드리아 지방 대회에서 아리우스와 그를 찬송하는
    애굽 감독들을 파면함.
       다. 그 세력이 점점 확대되고, 각지로 다니면서 반대 연설을 함.
    당시 유명한 니코메디아 감독의 유세비우스도 이에 합세함.
       라. 동방에는 아리우스 설이 유포됨.
       마. 황제는 스페인 감독 호지우스(Hosius)로 조정케 했으나 성공치
    못하므로 이 문제 해걸을 위하여 회의를 소집함.

  4) 회원
   (1) 유세비우스는 250묘으 아타나시우스는 318명으로 기록(아마 계산한
       시일이 차이가 난 듯하다)
   (2) 서방은 원거리이며 헬라어를 모르므로 10명만 참속함.
   (3) 박해 때문에 눈 멀고,양손 불구자,고행을 겪은 자들이 다수 참석
       하였다.
   (4) 회원의 파벌

     a. 아리우스파...유세비우스를 비롯하여 니케아,칼케돈,에베소 감독이
 이파에 속함 (아리우스도 장로로 참석)
     b. 중립파...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
     c. 정통파...소주지만 유력하였다. 알렉산더 골도바의 호시우스, 아타
 나시우스.

  5) 회의
   (1) 황제가 직접 참석하여 연설.
   (2) 의장은 유세비우스나 호시우스인 듯.
   (3) 아리우스파에서 신조 초안을 제출하였으나 기각됨.
   (4) 가이사랴 유세비우스가 신조 초안 제출 (화합 목적으로)
   (5) 논의의 초점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동질임> 아타나시우스는 추상
       적변론을 피하고 구원 사상에 근거하여 주장.

  6) 결의
   (1) 유세비우스가 제출한 초안(아리우수설 부인)에 수정을 하고 토론을
       종결,
   (2) 출석 회원 일동이 서명케 함.
     a. 가이사랴 유세비우스는 하루 생각하고 서명함.
     b. 니코메디아 유세비우스는 <이 문서에 동의치 않는 자는 처벌한다>
 는 마지막 문귀를 삭제하고 서명함.
   (3) 부활절은 주일에 지키기로.
   (4) 교회 정치에 관한 규정 제 20조를 제공함.

  <요약>

       *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의 사상 비교

 ┌───────┬────────────┬─────────┐
 │   │  아 리 우 스    │아 타 나 시 우 스 │
 ├───────┼────────────┼─────────┤
 │ 부 관 계  │  유  사     │동  질        │
 ├───────┼────────────┼─────────┤
 │ 신   성  │  반신성     │완전  신        │
 ├───────┼────────────┼─────────┤
 │ 인   성  │  특별히 주장    │완전인        │
 ├───────┼────────────┼─────────┤
 │ 창   조  │  무로부터 창조    │낳아진다        │
 ├───────┼────────────┼─────────┤
 │ 영   혼  │  영혼 무,로고스가 영혼 │         │
 └───────┴────────────┴─────────┘

  7) 폐회

     325년 7월 29일
     황제 즉위 20년 기념으로 전원 초대


 

   4. 기독론 논쟁

 

  1) 제 2차 회의

  (1) 장소...콘스탄티노폴리스, 381년
  (2) 소집자...테오도시우스 황제
  (3) 의 장...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4) 의 제... 아폴리나리스(Apolinaris)설.

  * 아폴리나리스의 주장은 그리스도의 인성 제한인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로고스가 사람의 영에 대치했고 그리스도는 사람의 영이 없으니 인성  제한
이라고 주장.

  (5) 결의
     a. 아폴리나리스 학설을 기각
     b.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며 완전한 인간이다.

  2) 제 3차 회의
  (1) 장소...에베소,431년
  (2) 소집자...테오도시우스 2세
  (3) 의제
     a. 네스토리우스(Nestorius)의 양성론
 그리스도는 신이 아니고 로고스가 임하였다.(신성과 인성 구별) 주
 장.
     b. 알렉산드리아 감독 키릴로스(376-444)가 항의
  (4) 결의
    가. 키릴로스파는 동방 회원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틈을 타서 네스토
 리우스의 출교를 결의.
    다. 네스토리우스파가 도착하여 키릴로스를 이단이라고 결의.
    따. 435년 네스토리우스를 아라비아로 유배함.

  3) 도적 회의

   (1) 장소...에베소, 449년
   (2) 의제...유티케스(Eutches)의 일성론 (일성론.Monophysotosm)그리스
       도는 이성( 인성과 신성)으로 되어 있으나 합일시 인성이 신성에침
       입되어 우리의 신체와 같지 아니하다는 주장
   (3) 경과

    a. 이 회의는 알렉산드리아 감독이 자파 세력의 확장을 위하여 유티케
       스를지원하였고, 테오도시우스 황제로 소집케 함.
    b. 알렉산드리아 감독 디오스코루스(Dioscorus)가 의장이 되어 병졸과
       무뢰한을 동원하여 반대파를 위헙하여 안디옥  파 수령을 내어 쫓고
       유티케스를 복직시킴 (그래서 <도적회의>라 부르고 정식 종교회의에
       계산치 아니한다)

  4) 제 4차 회의

  (1) 장소...칼케돈 (Chalchidon), 451년
  (2) 소집자...마르키아누스 (Marcianus)황제,600명 감독 참석.
  (3) 결과...칼케돈 신조를 작성
   * 이 회의에 대해서는 다음 요약을 참고 바람.

  5) 제 5차 회의

  (1) 장소...콘스탄티노폴리스,553년
  (2) 소집자...유스티니아누스 황제,527-565
  (3) 의제...일성론자와 화해하려고 삼장렬 (The Three Chapters:안디옥파
      의 세 신학자의 의견을 변박한 것)을 발표한 때문
  (4) 결과...칼케돈 신조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정통 교리를 삼음.

  6) 제 6차 회의

  (1) 장소...콘스탄티노폴리스,680년
  (2) 소집자...콘스탄티누스 4세
  (3) 의제...일의론(Monothelitism 양성을 가졌으나 신의만 가졌다.)
  (4) 결과...이의론 채택.

  7) 제 7차 회의

  (1) 장소...니케아,787년
  (2) 소집자..콘스탄티누스 6세
  (3) 의제...성화 숭배 문제
  (4) 결과...성화 숭배하기로.

  8) 제 8차 회의

  (1) 장소...콘스타티노폴리스, 869년, 879년.
  (2) 소집자..바실리우스
  (3) 의제
      a. 869년...이그나시티우스 대 포티우스
      b. 879년 ...니케아 신조 확인.

   <요약>
   * 칼케돈(Chalchedon)회의 결의 사항
   (1)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에도 완전, 인성에도 완전하다 (각 성질은 보
       존)
   (2) 그리스도는 참 신이며 참 인간으로 이성있는 영혼과 육체를 소유하
       였다.
   (3) 신성은 성부와 같고, 인성은 우리와 같으나 죄가 없다.(양성은 썩거
       나변하거나 떠나지 아니함).
   (4)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인성으로 동정녀에게서 출생한다.
   * 이 회의는 <니케아> <에베소> 양회의에서 정한 신조를 확인하고 설명
     을 가하여 교리를 명백히 하였다.

  * 세계 종교회의 일람표

┌──┬─────┬─────┬───┬────────┬─────────┐
│ 회 │ 장   소  │ 소 집 자 │연 대 │  논    점 │결     과     │
├──┼─────┼─────┼───┼────────┼─────────┤
│ 1  │ 니케아   │ 콘스탄티 │ 235  │ 호모이 우시우 │니케아 신조제정   │
│    │   │ 누스대제 │      │ 오스 유사,호모 │동질 부활절 일정  │
│    │   │       │      │ 우시오우스동질 │함      │
├──┼─────┼─────┼───┼────────┼─────────┤
│ 2  │  콘스탄티│ 테오도시 │ 381  │ 아리우스설 인성│아폴리나리스설부  │
│    │  노폴리스│ 우스제   │      │ 제한 부당 타고 │인싱인양성     │
├──┼─────┼─────┼───┼─┸──────┼─────────┤
│ 3  │  에베소  │ 테오도시 │ 431  │ 키릴로스설 대 │키릴로스 이김,펜  │
│    │   │ 우스2세  │      │ 스트리우스설 │라기우스설,이단   │
├──┼─────┼─────┼───┼────────┼─────────┤       결정.
│ 4  │  에베소  │ 테오도시 │ 449  │ 유티케스의 일 │이성론 채택     │
│    │(도적회의)│ 우스2세  │      │ 성론 반대 │      │
├──┼─────┼─────┼───┼────────┼─────────┤
│ 5  │  칼게돈  │ 마르키아 │ 451  │ 레오서한,통성 │칼게돈신조 이성일 │
│    │   │ 누스     │      │ 론 배격 │인격.      │
├──┼─────┼─────┼───┼────────┼─────────┤
│ 6  │ 콘스탄티 │ 유스티니 │ 553  │ 일성논자와 화 │有이성의 본체인   │
│    │ 노폴리스 │ 아누스대 │      │ 해하려고 삼장 │로고스     │
│    │   │ 제       │      │ 형  │      │
├──┼─────┼─────┼───┼────────┼─────────┤
│ 7  │콘스탄티노│ 콘스탄티 │ 680  │ 일의론  │이의론     │
│    │폴리스   │ 누스4세  │      │ 성화 숭배 │성화숭배     │
│    │   │       │      │ 반대  │      │
├──┼─────┼─────┼───┼────────┼─────────┤
│ 8  │콘스탄티노│ 바실리우 │ 869  │ 이그나시티우스 │이그나시티우스복직│
│    │폴리스   │       │ 879  │ 대주교 대 포티 │으로 포티아으파면 │
│    │   │       │      │ 우스 성령의 출 │니케아신조확인    │
│    │   │       │      │ 처  │      │
└──┴─────┴─────┴───┴────────┴─────────┘

 

 

      5. 수도원

 

  1) 원인

  (1) 기독교가 국교가 되자 기독교의 세속화 현상이 일어나고 여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금욕 생활, 경건 생활 운동이 일어남.
  (2) 교회가 조직화, 규율화 됨에 따라 개인적 신앙 활동을 수도원이라는
      별개의 사회에서 구하게 됨.
  (3) 복잡한 생활에서 떠나 물질없이도 만족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의 욕
      망이작용.

  2) 기원

  (1) 안토니우스(Antonius.356년 죽음)
     a. 이집트 부자의 아들로 태어 조실부모하고 누이와 같이 살음.
     b. <소유를 팔아 구제하라> (마19:21)라는 말씀에 감동하여 누이를 다
 른 사람에게 맡기고, 재산을 다 팔아 구제하고 굴속에 들어감.
     c. 추종자가 많음, 박해시에는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신자들을 격려함.
     d. 은둔 생활의 창시자

  (2) 공동 생활
     a. 유명한은자가 거주하는 곳에  많은 은자들이 모여옴.
     b. 서로 모여 기도하고 후에는 공동 생활을 하니 이것이 수도원의 기
 원이 되었다.

  3) 규 칙

   (1) 규칙 제정자들
    a. 파코미우스 (Pachomius)가 처음 제정, 나일강의 타벤나이(Tabennae)
       섬에수도원을 설립하고 규칙적으로 의식.공부,예배,노동,징벌에 관
       한 규정을제정.
    b. 바실리우스 (Basillius the Great)는 규칙을 정하고 교회와의 연락
       을 도모함 (300-379)
   (2) 규칙 제정의 필요성
    a. 극단적 금욕 생활을 막기 위하여
    b. 자유 방종을 방지하고 본래의 임무를 계속하기 위하여c. 명령 계통
       확립을 위하여 (의견 충돌의 방지 위해)

  4) 서방 수도원

   (1) 마르티누스 (Martinus)가 고을의 설립.
   (2) 암브로시우스 (Ambrosius)가 밀라노에 설립
   (3) 로마의 귀부인, 지식인들이 수도원에서 노동하며 생활(388년아우구
       스티누스)
   (4) 캇시아누스 (Cassianus) 가 마르세이유에 수도원과 수녀원을 개설.
   (5) 베네틱투스 (Benedictus, 480-543)가 수도원 규칙을 제정.

    a. 캇시아노 산 (Monte Cassiano)에 세운 수도원은 서방 수도원의 전형
       임.
    b. 규칙
     가. 수도원장은 전원의 선거
     나. 큰 일은 전체 회의에서, 적은 일은 원장이 수석 수도사와 협의하
  여 처리함.
    c. 입원 지원자들...일정한 기도 시험을 한 후, 일정 기간 정주할 것과
       엄격한 도덕을 지킬 것, 복종할 것을 서약한 후 허락.
    d. 노동을 장려하여 자력 생활을 함.
    e. 그레고리우스 1세는 이교도들에게 전도하는 임무를 맡겼다.
    f. 수도원을 학문의 중심지로 만드는데는 캇시오도루스(Cassiodorus)힘
       이컸다.

 

 

 

   6. 로마 교권의 강화

 

  1) 교권의 강화의 이유

  (1) 대도시 교회라 유력자가 많고 전도,구제,회당,건축비 부담으로 세력
      이집중됨.
  (2) 로마는 베드로와 바울의 순교지.
  (3) 동방 천도로 로마 감독의 지위를 중해 여기게 되었다.
  (4) 레오 같은 유능한 감독이 있었다.
  (5) 살디카 회의에서 결정.

 2) 레오 1세 (440-461년 재위)

  (1) 설교가, 문학가,정치가였다.
  (2) 로마 감독은 베드로의 권위를 계승한 것이라고 주장 (미16:9) 근거.
  (3) 하나님이 로마 제국을 세우심은 기독 교회를 위한 것이니 수도사의
      지위에 있을 만하다고 함.
  (4) 서 제국의 황제 바렌티아누스 3세는 칙령으로 로마 감독은 서방 교회
      의원수이며, 배반자는 국가 배반자라고 규정 (밀라노,북아프리카 등
      은 부인)


 

 7. 동방의 교부들

 

  1) 알렉산드리아 팔레스티나

  (1) 유세비우스 가이사랴
    a. 260년 팔레스티나 출생,신앙으로 감금된 일 있음.
    b. 315년 가이사랴 감독이 됨. 339년 사망시까지 궁정 출입을 함.
    c. 저서...<교회사> 콘스탄티누스 대제전> <복음의 준비> <복음의 증
       명>
    d. 후계자...유세비우스의 뒤를 이어 교회사를 집필한 사람.
    가. 소크라테스(Socrates)..5세기 초엽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수사학자
    나. 소조멘 (Sozomen)...소크라테스와 비슷.역사의 내용은 다름.
    다. 테오도레트(Theodoret)...구브로의 감독,458년에 죽음.많은 저술을
 남김.


  (2) 아타나시우스 (296-373)
   a. 326년 알렉산드리아 감독이 됨.
   b. 정통 고수에 매진
   c. 궁정 방침이 변동으로 3차 유배
    가. 335년( 콘스탄티누스)...트리야 유배.
    나. 342년 (콘스탄티우스)...로마 유배.
    다. 351년 (콘스탄티우스)...사막 유배.
   d. 죽을 때는 평안히 죽음
   e. 저서...<로고스의 성육신> <아리우스를 반격함> <콘스탄티누스에의
      변증론> 등.

  (3) 키릴로스 (Cyril)
   a. 알렉산드리아 감독 (413-444)
   b. 이론은 바르나 성격이 포악, 당파심이 강함.
   c. 신플라톤파 여철학자 히파티아(Hypatia)의 피살에도 책임이 있다.

  2) 시리아와 소아시아 지방 교부들

  (1) 데오도레 (Theodore)
   a. 길리기아 모브스에스티아 감독
   b. 성경 주석으로 유명 (그 단편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c. 역사적 언어학적 주석으로 유명.

  (2) 가바도기아 세 신학자
   a.바실리우스(Basilius the Great,330-379)
    가. 조모의 신앙 영향,안디옥,콘스탄티노폴리스,아덴(아테네)에서 수
 학.
    다. 355년 변호사가 됨. 자매의 권고로 수도원생활 시작.
    따. 365년 가이사랴 교회 부목사가 됨.5년후에는 감독이 됨.
    마. 교회 통솔,지도 능력이 특출하고 수도원 규칙을 제정.
    바. 저서<그리스도의 신성론> <성령론> 설교집,서신 등.

   b.닛사의 그레고리우스 (Gregorius Nassenus,332-395)
     가. 바실의 동생, 같이 공부함.
     나. 380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신학 논쟁에 참가,설교가.

   c.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Gregorius Nazianzus)

  (3) 크리소스토모스(Chrysostom;황금의 입)
   a. 346년 안디옥에서 출생,아버지는 장군으로 일찍 죽고 어머니 안투사
      (Anthusa)는 아우그수티누스의 어머니 모니카와 같이 칭찬받는 신앙
      인이다.
   b. 법률가, 수사학자,변호사
   c. 안디옥 감독에게 신학을 배운 후 세례받고 수도생활을 함.
   d. 안디옥 감독이 되고 (394년),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가 됨.
   e. 해석적 설교와 성경 주해에 노력
   f. 사치와 황태후를 공격하다가 404년 길리기아로 추방.


 

   8. 서방의 교부들

 

  1) 힐리리우스 (Hilarius, 295-368)

  (1) 프랑스 프와티에에서 출생, 철학과 문학에 뛰어남.
  (2) 350년 고향 교회 감독 정통 보수에 헌신.
  (3) 저서 <삼일신론> <신앙론> <시편 주해>

  2) 암브로시우스  (Ambrosius, 340-397).

  (1) 340년 고올의 수도 토리에서 출생,로마에서 교육받고 밀라노 주지사됨.
  (2) 5년후 감독이 죽고 후임이 됨.
  (3) 교회 통솔과 권위 유지에 명성.
  (4) 저서 <설교집> <성경주해> <찬미가>

  3) 히에로니무스(Hieronumus Jerome)

  (1) 346년 스토리돈에서 출생.
  (2) 20세에 수세,372년 동방 여행.
  (3) 베들레헴에서 새 수도원 건축
  (4) 구약의 라틴어역 성공 (12년간)


 

  9.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

 

  1) 생애

  (1) 북아프리카 타가스테(Africa Tagaste)에서 출생,부 파트리키우스
      (Patuicius)는 이교도 (후에 신자됨), 모 모니카(Monica)는 독실한
      신자.
  (2) 수사학자로 유명,청년기에 8년간 마니교(이원론 주장) 신봉.
  (3) 387년 3월 암브로시우스(Ambrosius)의 설교에 감화받고 입신 (롬
      13:14).
  (4) 힙포(Hippo)교회 감독 (395년)
  (5) 게르만족의 침공 때 76세로 죽음(430년)

  2) 사상

  (1) 신을 인격적 체험 대상으로 믿음.그리스도의 양성 주장.
  (2) 삼위일체 주장, 원죄 인정,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확신.
  (3) 예정론,무형 교회 내세관 확인.
  (4) 정통 신자됨이 구원의 필수 조건.
  (5) 성례와 의식,관계를 주장 (성례전론의 원조)

  3) 저서

  (1) 독백 (387년)...신,영혼,영생에 대해 논의
  (2) 참회록 (400) 자서전
  (3) 삼위론 (400-419)...삼위 동등 주장.
  (4) 하나님의 도성 (412)...지상 나라는 망하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
      다.


 

    10. 펠라기우스 (Pelagius) 논쟁.

 

   ( 동방 교회가 기독론을 논하고 있을 때 서방교회는 죄와 구원 문제를 논함)

  1) 라틴 민족

  (1) 죄에 대해 심각한 관념.
  (2) 테르툴리아누스가 죄의 유전을 가르친 이후 암브로시우스,힐라리우스
      같은학자들이 원죄 관념을 기초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
      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나 철저하지 못했다.
  (3) 아우그수티누스 시대에 와서 철저함.

  2) 펠라기우스

  (1) 영국인 수도사로 5세기 초에 로마의 도덕적 부패 시정에 노력.
  (2) 성질 온순,품행 엄정, 지식 명석.
  (3) 카르타고의 장로가 되려다가 파울리누스의 반대로 못됨
  (4) 에베소의 장로가 되어 그의 학설이 퍼짐.
  (5) 431년 에베소 대회에서 이단을 규정.

       *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교리적 차이

┌─────────────────┬─────────────────┐
│    아우구스티누스     │   펠라기우스   │
├─────────────────┼─────────────────┤
│ 1)하나님의 예정, 불가항력적 은총 │1)의지 노력으로 개인 구원  │
├─────────────────┼─────────────────┤
│ 2)아담 죄로 죽음      │2)아담 처음부터 죽을 사람으로 출생│
│        │ 범죄 여부 없이 죽음.  │
├─────────────────┼─────────────────┤
│ 3)아담의 죄 후손에게 영향     │3)아담에게만,전 인류는 무관함. │
├─────────────────┼─────────────────┤
│ 4)유아에게도 원죄 있음     │4)새로난 유아에게 아담과 동일 │
├─────────────────┼─────────────────┤
│ 5)아담 범죄로 죽음,그리스도     │5)율법도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 │
│   부활로 삼.       │     │
├─────────────────┼─────────────────┤
│ 6)믿음 통해 구원,세례시 사죄     │6)그리스도 오기 전에 무죄자가 있 │
│        │ 었음.    │
└─────────────────┴─────────────────┘

  3) 반 펠라기우스 설

  (1) 주장자..캇시아누스, 파우스투스
  (2) 주장
    a. 죄 유전 b.은혜로 구원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음.
    c.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제시, 인간 의지에 의해 받거나 거
       부된다.

 4) 도나투스 (Donatus, 카르타고 감독 )파

  (1) 주장
   a. 범죄자는 교회에서 제거하라.
   b. 범죄자가 회원으로 있는 교회는 하나님에게서 떠났다.
   c. 범죄한 교사에게 받은 세례는 무효.
   d. 따로 교회를 세워 재세례.

  (2) 411년 힐라리우스 (Hilarius)가 카르타고에 회의를 소집.276(도나투스),286 (아우구스티누스) 이단으로 규정.

  (3) 결정
   a. 집회를 금한다.   b. 회당을 정통파에 양도한다.
   c. 414년 시민권 박탈.  d. 예배자는 사형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조항에
        반대

 

 

   11. 예배와 예전

 

  1) 회당

  (1) 바실리카(Basilica)식. (2) 원형, 다각형.  (3) 비잔티움 식

  2) 풍속

  (1) 그리스도의 화상...키릴로스가 승리한 후 6세기에 그리스도의 화상을
      회당과 각 가정에 모시게 됨.
  (2) 성자 숭배...순교자 묘소에 모여 예배, 묘소에 성전 건축하고 유골은
      재단아래 둠.
  (3) 유물 숭배...의복,형구,용구 등이 고가로 매매됨 (병이 낫는다고).
  (4) 성모 숭배...영구 처녀설,성모라 함.
  (5) 천사 숭배.

  3) 예배

  (1) 순서 (설교보다 의식에 치중)
   a. 1부 (세례와 참회하지 않는 자도 참석) 성경 낭독,찬송,설교,기도.
   b. 2부 (1부 사람 퇴장한 후)
    가. 신자 위해 기도.      나. 헌물 모음 (집사들이)
    다. 감독과 장로들-평화의 키스   라. 상찬식 후 감사기도.
    마. 감독의 축복으로 끝남.

  (2) 절기
   a. 성탄절을 12월 25일에 지킴.
   b. 354년 로마에서, 379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c. 기원...로마의 3가지 축제.
    가. 사투날리아(Satunalia, 17-24일)...옛날 사투룬 신이 지배한 황
 금시대를 기념.
    나. 시길라리아 (Sigillalia,하순)...어린이들에게 인형을 주어 즐기게
 함.
    다. 브루마리아 (Brumaria, 동지제)...태양의 왕복 축하. 기독교인이
 축일을 모색하게 됨.

  4) 성경

  (1) 삼분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중에서)
   a. 정통...4복음,사도행전,바울 14서신,베드로 전서,요한 일서,계시록
   b. 이의 받는일...야고보,유다,벧후,요2,요3.
   c. 위경..바울행전,허마의 목양자,베드로 계시록,바나바서,12사도의
      교훈.
  (2)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50부를 양피지에 써서 주요 교회에 기증함-이의
      받는 글까지 포함.

   <요 약>

     *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의 상징적 차이

┌─────┬──────────────┬────────────────┐
│ 구  분 │     Augstinus    │   Aquinas       │
├─────┼──────────────┼────────────────┤
│ 신  관 │신을 인격적 체험의 대상으로 │유일신 삼위 일체는 계시로만     │
│     │믿으며,삼위일체설 확립   │암.        │
├─────┼──────────────┼────────────────┤
│ 인  관 │원죄 유전,영혼 유전,완전 타 │완전 타락 불인정,선행 가능     │
│     │락,선행 불가능    │        │
├─────┼──────────────┼────────────────┤
│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확신,  │그리스도 없이 속죄 가능 그리    │
│ 론     │신인 양성주장.    │스도의 구속을 십자가의 죽음만   │
│     │      │이 아니고 전 생애가 구속사임.   │
├─────┼──────────────┼────────────────┤
│ 구 속 론 │Catholic신자됨이 구원의 필  │그리스도의 없이 구원 가능,그리  │
│     │수 조건,그리스도의 십자가   │스도를 통하는 것이 최선의 길,   │
│     │속죄는 구원의 필요 조건.   │그리스도와 신비적 일치가 구속   │
├─────┼──────────────┼────────────────┤
│ 예 정 론 │예정론의 주장    │        │
└─────┴──────────────┴────────────────┘


 

  12. 교리와 신학.

 

  1) 화상 예배

  (1) 동 제국 황제 레오(Leo)가 2개의 칙령을 발표.
    a. 726년에 회당 안에 화상을 거는 것은 허락하나 입맞추지 못하도록
       높은곳에 걸라고 발표.

   <반대> - 시민,수도자,다메섹,요한, 서부 그리이스의 주민들은 해군으로
            유박
    b. 회당에서 화상을 일체 제거하라.
   <반대> - 그레고리우스 2,3세는 화상 반대자 추방을 선언 (731년)

  (2) 콘스탄티누스 5세 (741-775)가 대회 소집.

   <결정> - 화상,십자가, 휘장을 교회당,개인집,수도원 등에 계시하는 것
            을 금함 (서방 교회는 반대)

   (3) 제 7차 내케아 회의(787년.동서 회의라 불리움)
     a. 콘스탄티누스 6세의 어머니가 화상 예배를 좋아하고 아들의 섭정이
        되어교황 하드리아누스와 협의하여 회의를 소집하였다.
     b. <결정>
     가. 예수,천사,성모,성자 화상을 시인.
     나. 예배는 화상에게가 아니라 신에게 드린다.
     다. 등을 화상에 드리고 분향도 가하다.
     라. 화상 예배는 그 근원을 숭배하기 때문이다.

  2) 니케아 신조의 문구

  (1) 성령은 <성부에게서 유출한다>를 <성부 및 자신에게서 유출한다>고
      주장하는 학자 아리우스 (Arius)파 때문에.
  (2) 군중이 이를 채용하고 교황이 승인.
  (3) 동방 교회는 승인하지 않았고, 이것이 후일 로마 교회와 희랍 교회
      가 되었다.

  3) 이단 바울파 (Paulicians)

  (1) 개조
  콘스탄티누스 실바누스 (Constantin Silveranus, 650-660)a. 마니교 가정
에서 출생했으나 마니교를 배척하였다.

   b. 바울 서신에 감동되어 영과 유신,율법과 은혜를 대조하여 열심히 그
      주의를 설명함,
   c. 바울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자신을 실루아노,제자들을 디모데, 디도
      등으로 불렀다.

  (2) 주장
  1891년 아르메니아남방 에드미아찐 (Edmiatzin)도서관에서 발견된  < 진리
의 검> 이라는 책에 의함.

   a. 이원론 (이원론) 주장 (세상은 악의 세력이 조장했으나 영은 신에게
      서왔다.
   b. 예수는 하나님의 양자이다.
   c. 신약은 베드로 서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선한 신의 말씀이다.
   d. 로마 교회 제도를 혹평 (화상 예배,수도원,성례 등에 대하여)
   e. 생활은 순결,개혁 정신이 강함.

  (3) 전파
   a. 콘슨탄티누스가 27년간 키봇사에서 전도.
   b.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포고나투스 세메온 (Pogonatus Simeon)을 사자
      로 보내어 (685년)정통 교회를 따를 것을 권면하였으나 도리어 시메
      온이 감동되어 그 무리에 가담하고 지도자가 되었다. 시메온은 699년
      에 화형을 당하였다.
   c. 박해와 수령의 도덕적 타락 행위로 말미암아 분열되었다.(여황제 테
      오도라의 박해로 10만명이 죽었다).


 

   13. 니케아 회의의 삼위일체론

 

  동방에서 삼위일체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오리겐이었다.  오
리겐은 3세기 동방신학의 신학계를 독점하였다.  그는 폭이 넓으면서도  다
양하게 여러면에서 그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삼위일체론에서도 그러했다.
오리겐은 성자의 출생에 대해 성자의 '영원한 출생'을 말하는가 하면, 성자
를 "제2의 하나님" 혹은 "피조물"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모호한 가르침 때문에 그의 제자들은 크게 둘로 나누어 지게
되었다.  우파의 대표적 사람은 그레고리우스  타우마투르고스인데  그들은
오리겐의 가르침에서 성부로 부터 성자의 영원한 출생을 받아들였고,  좌파
의 학문적 대표는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인데 이들은 호리겐의  가르
침에서 성자는 성부보다 못한 제2의 하나님 혹은 피조물이라는 주장을 받아
들였다.

  이런 교회의 분열은 제국의 통일을 원하는 콘스탄틴 황제에게는 크나  큰
도전이었다.  그도 처음에는 가볍게 보았으나 그의 고문 감독이었던 코르도
바의 호시우스의 진언에 따라 황제의 명으로 325년 6월 니케아에 최초의 세
계적 종교회의를 열었는데 300명에 이르는 감독들이 모이게 되었다.

  그럼 여기서 논의된 삼위일체 교리의 신학적 논쟁들과  거기서  채택되어
작성된 신조의 내용을 교리적 측면에서 살펴 보겠다.

      A. 신학적 논쟁점

  니케아 회의는 세 파로 나누었다.  알렉산더와 아다나시우스가  영도하는
동질론자들(Homoousians)과 아리우스를 따르는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
그리고 상황을 잘 모르는 화평을 희망하는 자들로  가이샤라의  유세비우스
였다.

  결국 니케아 회의는 아리우스주의와 알렉산더 사이의 신학적 논쟁이었다.
여기에서 아리우스주의는 배격되고 이단으로 정죄되어  알렉산더의  신학을
따르는 반아리우스적인 신앙고백이 채택되었다.

  아리우스는 그리스도를 노스틱주의의 창조신(demiurge)과도 같은 한 신화
적 표상 -반신(半身) 반인간(半人間)의 존재 - 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참
으로 신적이지만 그러나 성부와 동등하지는 않다.  성부와 성자사이에는 본
질적 차이가 있다.  홀로 아버지만이 진정한 신족 존재이며 아들은  피조물
에 지나지 않는다.  아들은 세계의 창조를 중개하기 위하여 그리고  세상에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하여 시간과 공간이 있기 전에  창조되었다.   이것은
종속설을 말하는 것 이었다.

  여기에 대항한 알렉산더의 니케아 신조는 '그리스도인 예수는 육을  입은
반신(半身)이 아니며 피조물의 계열에 있어서 최고의 피조물도 아니고 그는
신이다.  그는 아버지와 동질(        s, homoousios)인 하나인  실체이다'
라는 것으로 니케아의 결정적 명제는 [아버지와 동질](아버지와 한 실체)이
라는 표현에 있다.

      B. 신조의 내용

  니케아 신조의 신앙고백은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는 전능한 아버지, 유
일한 하나님,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모든 것의 창조자를  믿습니다."
<볼 수 없는 것>이란 말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관계를 가진다.  신은 그저
단순히 지상의 모든 것의 창조자일 뿐 아니라, 플라톤 철학속에 나타난 <본
질들>의 창조자이기도 하다.

  니케아 신조는 이렇게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유일한 주 예수 그리스
도, 아버지께서 낳으신 하나님의 아들, 아버지의 본질에서 낳은 외아들, 하
나님의 하나님, 빛의 빛, 참 하나님의 참 하나님, 낮아지고 만들어지지  않
은, 아버지와 동질[하나인 실체, homoousios]인 분을 믿습니다.  이 주님에
의해서 모든 것 곧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주님은 우리 인간을 위해, 우리의 구원을 위해, 강림하시고 육체를  입으
시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서
하늘에 오르셨으며 거기서부터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을 믿습니다."  그리고나서 이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
이 이어진다. "그리고 주께서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또는 무로
부터 만들었다거나, 다른 실체나 사물로 부터 만들었다고 말하며 신의 아들
은 피조물이며, 변화되고 변질된다고 말하는 사람들, 이들은 성스런 사도의
교회에 의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신조에 기록된 신앙고백이
다.

 

 

    14. 니케아 회의 이후의 삼위일체론

 

  니케아 회의에서 아리우스주의를 정죄했지만, 논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
았고 그후 50여년 동안 계속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일부 감독들이 니케
아 신앙형식에 대해서 진지한 의문을 제기하는데 있었고 또한 황실의  정책
이 돌변하는데, 즉 콘스탄틴 황제의 정책의 유동성 - 제국의 통일을 위하여
- 때문이었다.

  니케아 신조의 형식에서는 '성령을 믿는다'고만 긍정하였을 뿐 신성 안에
서의 성령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공개적인 논쟁은 없었기에 이것이  논쟁
점이 되었다.   이 선조를 반대하는 반니케아 주의자들은 세파로  나누어지
게 되었는데 즉 동일본질(homoousios)를 반대하는 자들로, 첫째 극단적  소
수의 아리우스주의자인 상이본질파(Anoimoeans:相異本質), 둘째 다수의  보
수적인 유사본질파(homoiousian:類似[homoiousios]本質), 세째 이것도 저것
도 아닌 정치적인 아리우스자인 동류본질파(ho-moeans) 이었다.

  이들 중 극단적 아리우스 주의자들은 알렉산드리아와 다른  몇몇  곳에서
그 세력을 확대하였으나 중립적인 다수의 보수주의자안 유사본질파와  동류
본질파들은 358년 앙카라에서 열린 회의에서 그 모습이 드러나는데  이들은
니케아파보다도 극단적 아리우스를 더 적대시 하게 되어 마침내 보수파들은
아다나시우스파와 연합하였다.

  황실 정책의 유동성 때문이라는 것은 콘스탄틴 자신이 제국의 결속을  다
지는데 목적을 둔 만큼 한때는 니케아파를 지지하다가 돌변하여 반대하기도
하였다.   그가 죽자 그의 아들들은 가지각색이었다.  콘스탄틴2세는  콘스
탄틴을 이어 니케아파를 지지하고, 그가 죽자 제국은 동.서로 나뉘어  동방
정부의 콘스탄티누스는 아리우스주의를(반니케아파)  지지했고  서방정부의
콘스탄스는 니케아파 즉 아다나시우스를 지지하므로 두 형제  황제  사이는
우호적이지 못했는데 350년 마그넨티우스가 콘스탄스를 살해하므로  명실공
히 콘스탄티누스가 전 제국의 황제가 되므로 잠시 아리우스주의가 정치적으
오 진전됨에 따라 아다나시우스는 이런 와중에서 5차례에 걸쳐  추방살이를
하였다.

  361년 콘스타티우는 사망하고 그를 계승한 황제들은 교회정치에 거의  관
여하지 않았고 373년 아다나시우스가 사망하자 이를 계승한 신(新)  니케아
파가 나타났는데 이들이 카파도키안인 가아샤라의 바질, 나찌안주스의 그레
고리, 니사의 그레고리였다.   378년경에 나찌안주스의 그레고리가  아리우
스주의의 반박을 위해 콘스탄티노플에 간 뒤 379년 니케아  신앙의  추종자
데오도시우스가 즉위하여 381년 콘스탄티노플에 동방교회 회의를(제2차  전
체공의회) 소집하여 신조를 최종 확정했다.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니케아
신조를 그대로 채택하고 다만 니케아신조에 덧붙인 저주의 말을  제거했다.
그래서 이 신조는 니케아신조를 대신해서 오늘날까지 그냥  "니케아신조"라
고 불리워진다.

      A. 아다나시우스의 삼위일체론

  아다나시우스가 삼위엘체론 형성에 있어서 크게 공헌한 것은  니케아신조
에도 잘 명시되지 않은 성령의 위격에 대하여 성령이 완전히 신적이며 성부
와 성자와 더불어 공동실체적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니케아신조에서 자세히 논의되지 않았던 삼위일체론적 도식을 완성하였다.

  아리우스는 성령을 하나의 위체로 간주하였으나 성자의 본질이 성부의 본
질과 전혀 같지 않은 것과 꼭 같이 성령의 본질도 상자의 본질과 전혀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다나시우스는 논증을 위해 '성자'와  '신앙의
표준'에서 권위를 찾았는데

  성경 전체에 걸쳐서 일치된 점은 성령이 피조물과 공통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고 '성삼위 안에 있는 신성에 속하며 그 신성과 하나이다'라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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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증명하고 그는 성삼위가 영원하고 동질적이며 분할 할 수  없다는  것과
성령이 성삼위의 일원이기 때문에 그분은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공동실체적
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아다나시우스는 마태복음 28:19의 '세례의식문'
을 통해서 성령이 피조물일 수 없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아다나시우스의 삼위일체신학이 갖는 큰 약점은 삼위일체의 다양성과  통
일성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확정된 용어가 결어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삼위의 숫자적 동일성을 표현하기 위해 동일본질(homoousios)이란  말
을 많이 쓰지 않고 '성부의 본질에 귀속된(    s   s          s       s)'
이라든가 '실체에 있어서 마찬가지(     s          )'라는 등의  표현으로
만족한다.  그는 성부와 성자의 존립체를 품격으로 표현할 자기 자신의  용
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는      와         s의 차이를 별로 혹은 전
혀 식별하지 못했던 같다.  그의 기본 입장은 무한하고 단순하고  나뉠  수
없는 신적인      가 동시에 성부와 성자라는 것이다.

      B. 카파도키아 교부들의 삼위일체론

  감독이며 동시에 신학자였던 세 사람이 4세기 후반부의 신학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활약했는데 일반적으로 이들을 가라켜서 세 사람의 위대한 카파
도카아 교부들이가고 부른다.  즉 카파도카아 지방의 가이샤라의  대  바질
(Basil, the Great), 그의  동생이며  니사에서  감독으로  있는  그레고리
(Gregory), 그리고 이 두 형제와 다같이 친분을 나누었던 나찌안주스의  그
레고리이다.

  세 사람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은 나찌난주스의 그레고리였는데 그는  교부
들 주의 신학자였다.  그는 삼위일체교리를 위해 결정적인  도식을  만들어
냈다.  이를 위해 아다나시우가 못했던 여러가지 개념을 구별 지었다. 그들
은 두 계열의 개념을 사용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신성>, <하나의  본
질 또는 존재>, <하나의 본성>을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  실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