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가톨릭의 역사
연 도 | 사 건 | 내 용 | 주 요 인 물 |
220 경 |
| ㆍ로마 감독 카릭스투스가 처음으로 마16:18을 근거로 교회가 베드로 위에 세워졌으며 로마의 감독이 그의 계승자라고 증명하고자 함 | 카릭스투스 ( 218-223 로마 교황 ) |
250 경 |
| ㆍ원래 로마교회가 축출됨 -> 이들은 알프스로 들어가고, 코르넬리우스파가 로마교회의 이름으로 행세하다가 후에 콘스탄틴이 공식적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로 인정 ㆍ성직계급제도(hierachy) 본격화됨 ㆍ주교의 직위가 법적인 규례가 됨(카르타고이 키프리안에 의해 발전) | 이교주의자 코르넬리우스파 |
300 경 |
| ㆍ죽은자를 위한 기도 시작 ㆍ십자가를 긋는 것 시작 ㆍ마리아 평생 동정녀 교리가 가르쳐지기 시작 ㆍ침례중생설 등장 ㆍ평신도의 설교 금지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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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10.28 | 멜비안다리 전투 | ㆍ대 음모자 콘슨탄틴 황제가 하늘에 나타난 십자가의 환상을 봄 - 그가 본 십자가는 주술적 힘이 있다고 믿어지던 이집트의 앵크 십자가로 알려져 있음 | 콘스탄틴 |
313 | 밀라노 칙령 | ㆍ기독교 공인 → 참그리스도인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술수 → 교회와 국가의 통합 | 콘스탄틴 ( 태양신숭배자 ) |
320 |
| ㆍ밀랍 초(Wax Candles) 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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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
| ㆍ일요일을 공휴일로 지정 | 콘스탄틴 |
325 | 니케아 종교회의 (1차) - 318名 참석 - Ecumenical Councils | ㆍ교회의 세상권력 통제를 위한 새로운 체제 구축 (많은 주교들의 협조로 이루어짐) ㆍ콘스탄틴은 자기의 모든 신하들에게 기독교인이 되도록 명령함 ㆍ콘스탄틴은 "최고의 성직자" 칭호를 받음 ㆍ성찬식 집례가 성직자에게만 허용됨 ㆍ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의 감독을 최고의 대감독이나 교부(추기경)로 임명함 ㆍ동방교회 수립 ㆍ부활절 제정 / 유월절 거부 / 아리우스 정죄 (참고) 결의내용: "성자는 성부와 함께 동등하며, 동일 본질이며 영원한 분이시다" | 콘스탄틴이 소집 아리우스 알렉산더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 아타나시우스 |
365 | 라오디게아 종교회의 | ㆍ결의내용 : "개인은 교회에서 찬송을 작시, 작곡할 수 없고, 부를 수 없다" - 이에 따라 정규적인 임명자 외에는 어떤 형태로든지 일반인들은 찬송을 부를 수 없게 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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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 |
| ㆍ천사, 죽은 성인, 형상 숭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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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 |
| ㆍ로마 감독 데마수스가 이교도 최고 제사장 직인 Pontifix Maximus (최고 승원장)로 선임됨 - (이 칭호는 Julius Caesar 에 의해서 바벨론 이교주의로부터 로마 황제들에게 유입되었던 것임) | 데마수스 |
380 |
| ㆍ기독교 국교 선포 | 데오도시우스 |
381 | 콘스탄티노플 회의 (2차) - 150名 참석 | ㆍ니케아 종교회의 결과 승인 ㆍ삼위일체 논쟁에 종지부를 찍음 ㆍ아폴리나리우스파 정죄 | 데오도시우스가 소집 멜레티우스 |
394 |
| ㆍ미사가 매일의 의식이 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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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 |
| ㆍ암흑시대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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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 에베소 종교회의 (3차) - 250名 참석 | ㆍ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Mother of God)"라고 공인됨 (이것은 알렉산드리아의 시릴의 가르침을 승인한 것임) → 원래 그 칭호는 "Isis"의 칭호였음 ㆍ에베소는 오래 전부터 다이아나를 동정녀와 어머니 여신으로 경배해온 도시임 ㆍ유아세례 인정 ->어거스틴의 가르침 ㆍ교황이 소유하고 있는 열쇠가 곧 사도 베드로에게 주어졌던 바로 그 권력의 열쇠라고 주장함 (로마 교황이 Fontifix Maximus가 된 지 53년 후) | 데오도시우스2세 발렌티안3세 |
* 451 | 칼케돈 공의회 (4차) - 500~600名 참석 | ㆍ"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 반복 cf) 초기수백년간 교황들은 마리아숭배를 금했었음 (참고)결의내용: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혼합되거나 변하지 않고,나눠지지 않고,분리될 수 없다" | 레오1세 디오스쿠르스 유티케스 |
500 |
| ㆍ사제들이 특별한 의복을 입기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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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 |
| ㆍ병자성사가 행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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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 |
| ㆍ몬테가시노 수도원이 설립됨 - 이것은 후에 모든 수도원의 모델로 승인됨 ㆍ수도사들에게 가난과 독신생활 외에도 은둔생활이 부과됨(6세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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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 | 콘스탄티노플 회의 (5차) -165名 참석 | ㆍ어거스틴의 "신의 도성"(De Civitate)을 세상통치를 위한 이론으로 받아들임 - 이 이론의 핵심은 교회가 온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것으로, 카톨릭이 주장하는 무천년설의 토대가 되었음 ㆍ이 공의회의 결정 하에 세속 국가는 점차 로마의 종교가 다스리는 눈에 보이는 교회 제국에 의해 대체되기 시작함 | 유스티아누스 황제 유티키우스 |
593 |
| ㆍ연옥 교리 등장 (영혼이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성결하게 되는 장소가 있다고 함 ) ㆍ"우리는 연옥이라는 곳이 있음을 믿음으로 아나니, 그곳은 사소한 실수들이나 혹은 죄로 인한 일시적인 징벌을 면죄받는 곳이다." | 그레고리 교황 죠지 1세 |
600경 |
| ㆍ예배에 라틴어 사용 시작 ㆍ마리아, 죽은 성인들, 천사들에게 바치는 기도 시작 ㆍ그레고리 대제가 새로운 중세 신학을 요약함 (행위에 의한 구원, 연옥, 미사 등 포함) ㆍ그레고리는 처음으로 교회 군대를 결성하고 자금을 조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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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
| ㆍ보니페이스 3세(Boniface Ⅲ)가 최초로 교황(Pope)으로 공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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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681 | 콘스탄티노플 회의 (6차) | (참고)결의내용: : 단일신론 거부 / 호노리우스 교황을 이단으로 정죄함 | 콘스탄틴4세 |
709 |
| ㆍ교황의 발에 입마추는 관습 시작 (이전에는 이 관습이 단지 황제들을 위해서만 행해졌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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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7 | 니케아 회의 (7차) | ㆍ죽은 성도와 순교자들에 대한 기도가 공인됨 ㆍ성상숭배를 합법화시킴 ㆍ유물숭배 (유물을 제시하지 않으면 어떤 주교도 교회건물을 헌당할 수 없게 함) ㆍ성자숭배 | 콘스탄틴6세 이레네 황후 |
847 |
| ㆍ중대한 위조 문서들이 모두 수집됨 - 이 모든 문서들은 교황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음 - 평신도는 주교에 대해 고소할 수 없다 - 사제는 상급자에 대해 고소할 수 없다 - 주교에 대한 유죄판결은 72명의 증인을 필요로 한다 - 주교는 세속 재판관 앞에서 고소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지 않는다 | 이시도르 |
848 | 미욱스 회의 | ㆍ유대인에 대한 법적 규율을 강화함 ㆍ(반셈족주의의 근원은 대주교 아고바르드(778-840)가 쓴 5개의 반유다인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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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 |
| ㆍ소금을 녹인 성수의 권위 인정 | 교황 레오4세 |
858 |
| ㆍ콘스탄틴의 거짓 기증 문서들 등장 - 콘스탄틴이 로마에게 온 땅의 세속 권력에 대한 절대적인 우월권을 부여했다는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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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9 | 제8차 종교회의 (콘스탄티노플) | ㆍ지도적인 감독의 문제가 쟁점 ㆍ희랍정교회와 로마카톨릭이 분리됨 | 바시리우스 마레도 |
890 |
| ㆍ성 요셉 숭배가 처음으로 나타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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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 |
| ㆍ추기경 대학이 시작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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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5 |
| ㆍ벨의 세례가 제정됨 | 교황 요한14세 |
995 |
| ㆍ죽은성도들을 성자로 인정하는 것이 시작됨 | 요한15세 |
998 |
| ㆍ금요일과 사순절 기간 동안에 금욕이 부과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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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1012 | 유대인 대학살 | ㆍ루엔, 오를레앙, 리모게스, 마인즈와 로마 등지에서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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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4 | 카톨릭 - 정교회 분리 | ㆍ로마 교황 레오4세가 콘스탄티노플 교부(그리스 정교회의 우두머리)를 파문함 ㆍ콘스탄티노플 교부 또한 로마 교황(희랍 정교회 교부)를 파문 | 교황 레오4세 |
1059 |
| ㆍ추기경단(the College of Cardinals)조직 → 교황 선출 기능을 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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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4 |
| ㆍ독신생활 명령 "로마교회는 하나님에 의해서만 창설되었고 로마 교황만이 보편적이라고 불릴 수 있다. 그만이 어떤 사람에 의해서도 심판당하지 않고 로마교회는 결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영원히 오류를 범하지 않으리라" | 교황 그레고리7세 →'이교도는 죽여도 좋다'고 함 |
1096 | 십자군 원정 시작 | ㆍ팔레스타인을 회교도들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명목( 7차 이상에 걸쳐 행해짐) ㆍ그리스정교인들 및 자기들과 입장이 다른 참 기독교 신자들을 대량 학살함 ㆍ십자군 원정의 결과 교황청의 권위 격상 | 우르반2세 |
1100경 |
| ㆍ미사를 드릴 때 사제에게 돈을 바치는 관습이 보편화됨(시작은 7~8세기 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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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 제1차 라테랑 회의 (서방 공의회) (서방교회 회의) -300名참석 | ㆍ공식적으로 성직자에게 독신생활을 부과함 | 교황 칼릭스투스2세 |
1139 | 제2차 라테랑 회의 (서방 공의회) | ㆍ교황권에 대항하는 불순응자들(페트로-불로시안파, 아놀드파)을 처단할 목적으로 소집 | 교황 이노센트2세 |
1170 |
| ㆍ사제 앞에서만 유언할 수 있도록 법령 공포 → 임종 시 재산을 교회에 헌납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 | 교황 알렉산더3세 |
1179 | 제3차 라테랑 회의 (서방 공의회) | ㆍ왈도파와 알비겐파의 정죄를 위해 소집 ㆍ칼로 이들을 죽이도록 명령함 | 월터 맵 |
1184 | 베로나 공의회 | ㆍ종교재판소(Inquisition) 인정 - 교황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 고문을 주도록 결정 ㆍ왈도파를 파문함 | 교황 루시우스3세 |
1190 |
| ㆍ면죄부 판매 시작(십자군 원정시부터 유행함) ㆍ"선행", "연옥" cf) 면죄부는 원래 사죄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바치는 자선헌금이었으나 16C 초에는 교황청의 중요한 수입원이 됨 | 교황 클레멘트3세 |
1215 | 제4차 라테랑 회의 - 412名의 감독과 800名의 수도원장과 부원장등 참석 | ㆍ유대인들에게 노란'수치의 뱃지'착용 명령 ㆍ비밀 고해 제정 ㆍ화체설을 공식 교리로 선포 ㆍ국가에게 이단자 처벌 권한을 부여함 ㆍ교황 이노센트 3세가 교황직의 세속적 위치를 역사상 그 절정에 올려놓음 "베드로의 후계자는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의 중재자로서 선택되었다. 그는 하나님보다는 아래, 인간들보다는 위에 위치한다" | 교황 이노센트3세 |
1226 |
| ㆍ성체 숭배가 시작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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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 톨루스 회의 (발렌시아 공회) | ㆍ평신도에게 성경 소유 및 읽기 금지 ㆍ이단심문소 허용 ㆍ자국어 성경 번역 금지 | 교황 그레고리9세 |
1234 |
| ㆍ카메라 아포스틀르카(재정 담당부) 설치 - 증식되는 교회 재산 관리를 위해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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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5 | 리용 회의 | ㆍ독일황제 프레드릭1세 파문 목적 | 교황 이노센트 4세 |
1252 |
| ㆍ고문을 인정함 | 교황 이노센트 4세 |
1274 |
| ㆍ로마파와 희랍파의 통일 시도 -> 실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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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7 |
| ㆍ수도사의 어깨걸이 등장 | 시몬 스토크 (영국의 승려) |
1300.2.22 | 희년(Jubilee)선포 | ㆍ교황 보니페이스 8세(성년의 창시자)는 이 해를 희년으로 선포하고 성 베드로성당, 성 바울성당 방문자에게 "일체의 모든 죄를 아무런 보류사항 없이" 사해줄 것을 약속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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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 |
| ㆍ"Unam Sanctam" → "하나 그리고 거룩"을 의미 "모든 인간들이, 일체의 예외가 없이 로마 교황에게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고 필요하다" - 모든 사람은 구원을 받기 위해 로마 교황에게 승복해야 한다 - 물질의 검(劍)은 교회를 위해 빼야 하고, 영적인 검은 교회가 뺀다 - 교황의 수위권이 세속적인 일에도 행사되어야 한다 - 세속 정권은 교회를 상위 권세로 여기고 승복해야만 한다 ㆍ로마 카톨릭 교회만이 유일한 참교회이고, 이 교회 밖에서는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함 | 보니페이스8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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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1320~1384 죤 위클리프 (영국) / 1373~1415 죤 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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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8-1417 | 교황청의 대분열 (the Great Papal Schism) | ㆍ서로 경쟁하던 세 명의 교황, 즉 우르반4세, 클레멘트7세,알렉산더5세가 서로 파문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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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 |
| ㆍ죤 후스 화형 (보헤미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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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1418 | 콘스탄스 회의 | ㆍ교황 마틴5세에의해 세명의 교황이 쫓겨남 ㆍ교황 알렉산더5세는 볼로냐에 수감됨 ㆍ1414년회의에서 평신도들에게 주의 만찬시 포도주를 주는 것 금지가 선포됨(그레고리1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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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9 | 플로렌스 회의 | ㆍ연옥 교리 채택 (1548년 재확인) ㆍ7가지 성사 한정 | 유게니우스4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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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1452~1498 사보나롤라 (이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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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1454 | 실레시아 대학살 | ㆍ종교재판소장인 카피스트라노 성 요한에 의해서 시작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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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1481~1531 쯔빙글리 (스위스) 1483~1546 마틴루터 (독일) - 1530년 멜랑크톤과 함께 루터교회 조직 1509~1564 죤 칼빈 (프랑스) - 1541년 장로교회 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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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 |
| ㆍ염주 | 교황 율리우스3세 |
1521.1. |
| ㆍ루터를 이단으로 선포함 | 교황 레오10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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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1534(5) 영국 국교회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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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0 |
| ㆍ예수회 공인 | 교황 바울3세 |
1555 | "옥스버그의 평화" | ㆍ로마카톨릭과 루터교회의 상호 불간섭 협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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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1560 죤 녹스 스코틀랜드에서 최초의 장로교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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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5-1563 | 트렌트 회의 (1945 - 47) (1951 - 52) (1962 - 63) | ㆍ교회의 전통이 성경과 같은 권위를 지닌다고 선언 ㆍ외경들이 성서에 첨가됨 (외경 중 상당부분을 정경으로 인정) ㆍ화채설 부인하는 자에게 저주를 선언 (구원에 필수불가결하다고 함) ㆍ성인들의 중보 부인하는 자에게 저주를 선언 ㆍ죽은사람들을 위해 드리는 미사 인정 (순교자들의 사체 숭배 결정) →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성인들이 인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있다고 함 ㆍ연옥 개념을 교리화시킴 ㆍ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구원에 이른다고 믿거나 그리스도가 갈보리에서 완벽한 속죄를 이루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파문당함 ㆍ면죄부의 유용성 재확인 ㆍ7성례전 고수 cf) 로마 카톨릭 교리의 핵심이 모두 포함되어 있음 ㆍ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타파하기 위한 목적 | 교황 바울 3세 ~ 교황 피우스 4세 |
1572.8.22 | 성 바돌로메 대학살 | ㆍ프랑스 왕의 여동생이 프로테스탄트 지도자인 꼴리니 장군과 결혼하게 된 사건이 발단 ㆍ결혼식 축하연 4일째 되던 날 한밤중에 신호를 받은 병사들이 모든 프로테스탄트 집에 난입 ㆍ처음 3일동안 만명 이상의 프로테스탄트 살해 (프랑스 칼빈주의자들인 위그노(Huguenots) 학살) ㆍ파리로부터 전국적으로 확산, 총 7만명(혹은 10만명) 학살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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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경 |
| ㆍ스카플라리오 등장 - 모직으로 된 긴 천 조각을 옷의 안이나 위에 걸치는 것으로, 그 목적은 이런 스카플라리오를 축복한 그룹들이 제공하는 면죄를 얻기 위한 것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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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1611 킹제임스 성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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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1.10 | 아일랜드 대학살 | ㆍ예수회의 창시자인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가 베푼 향연에서 모든 프로테스탄트들이 동시에 살해됨 (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약 40,000 명이 무참히 살해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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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8 | "웨스트라리아의 평화" | ㆍ로마 카톨릭, 루터교회, 장로교회간의 평화협정 참고 : 16세기 말 세속정부에 의해 뒷받침된 다섯 개의 국교회들 즉, 로마카톨릭, 희랍정교회, 영국교회, 루터교회(독일교회), 스코틀랜드교회(장로교회) 모두가 재침례교도와 왈덴시스를 핍박하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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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1703 죤 웨슬레 / 1708 찰스 웨슬레 / 1714 죠지 화이트필드 / 1788 알렉산더 켐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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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 |
| ㆍ예수회(Jesuits) 부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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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11.8 |
| ㆍ마리아 무염시태(Immaculate Conception) →마리아가 임신하는 첫 순간에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특권과 은혜로 인해 원죄의 모든 더러운 흔적으로부터 제외되었다는 것 | 교황 비오9세 |
1856 |
| ㆍ연옥협회 (Purgatorian Society) 설립 →죽은 후에 자신을 위해 미사를 드려주도록 미리 등록하고 돈을 지불케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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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 |
| ㆍ80가지 죄의 요목 선언 ㆍ로마 교회가 승인하지 않은 종교나 양심이나 언어나 출판 및 과학적 발견의 자유를 억제함 "하나님의 법에 관한 한, 어느 누구에게도 카톨릭 이외의 다른 종교를 받아들일 참 권한이 없고, 카톨릭 교리 이외의 다른 교회의 회원이 될 참 권한이 없으며, 카톨릭 교회가 명하거나 인가한 것 이외의 어떠한 다른 형태의 예배를 행할 권리가 없다" - 세상의 모든 규율에 대한 교황의 세속적 권위를 주장함 | 교황 비오9세 |
1870 | 바티칸 회의 | ㆍ교황 무오설 선포 → "교황은 직무중의 그리스도로서 재판하고 권능을 가지신 그리스도이시다" | 교황 비오9세 |
1908 |
| ㆍ신랑 신부의 종교가 달라 천주교 사제가 집례하지 않는 모든 결혼을 무효화시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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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 | 평신도 사도직 운동 시작 | ㆍ아일랜드 더불린 시에서 결성됨 ㆍ마리아 군단을 통해 시작됨 ㆍ목적은 니콜라 체제를 굳히기 위한 작전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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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 | 공산주의자들과 제1차 협상 | ㆍ러시아 정교회를 로마 카톨릭 교회로 바꾸겠다는 교황 비오9세의 계획을 레닌에게 전달 ㆍ러시아 정교회 교인들을 암살하기 위한 조치들이 만들어짐 | 교황 눈시오, 유게니오 파셀리 |
1929 | 바티칸 - 파시스트 협약 | ㆍ이탈리아독재자 뭇솔리니와 교황에 의해 체결 ㆍ추기경 파셀리는 자기 교회의 미래는 공산주의가 아닌 나찌와 함께할 것이라고 확언 | 교황 비오11세 |
1933.6 | 히틀러 - 바티칸 협약 | ㆍ교회 문서 16조 -> "나는 합법적으로 설립된 나찌 정부에 충성할 것을 맹세한다. 나는 나찌정부를 위태롭게 하는 모든 유해한 행동들을 피하려고 애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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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5.13 |
| ㆍ"파티마의 숙녀"(마리아)에게 왕관을 씌우고 그녀를 "세상의 여왕"으로 공포함 | 교황 비오11세 |
1950.11.1 |
| ㆍ마리아 몽소승천(蒙召昇天)(Assumption of Mary) 선언 →"동정녀 마리아의 육과 혼이 천상영광으로 승천하셨도다" [교황교령] ㆍ이것을 믿지 않으면 영원한 형벌의 고통을 줌 | 교황 비오12세 |
1960 | 바티칸 - 모스크바 협약 | ㆍ공산주의의 주요 적이었던 로마 카톨릭 교회가 공산주의와 제휴함 | 교황 비오11세 |
1962 -1965 | 제 2 차 바티칸 회의 | ㆍ로마의 공식적인 이미지 재형성에 주력 ㆍ금요일에 고기를 먹는 것, 성찬식 전에 먹고 마시는 것, 성체와 기타 다른 기물들을 만지는 것 등 예전에는 행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들이 폐지됨 ㆍ주제는 에큐메니즘(세계 종교일치) - 종교통합을 위한 진일보가 이루어짐 ㆍ공산주의와 제휴 ㆍ교리의 재확인 : - 교황수위권, 로마 카톨릭 사제직, 미사의 화체설, 고백성사, 성유지순례, - 성례전적인 (sacramental) 믿음+행위복음, - 성경과 동등시되는 카톨릭 전승, - 그리스도와 공동대속자이자 하늘황후(하늘의 여왕)인 마리아, - 연옥, 죽은자를 위한 기도, 죽은자에게 하는 기도 등 ㆍ외형적인 변화가 있었으나 교회 교리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며, 사실상 그것을 강화했음 | 교황 요한23세 |
1965 |
| ㆍ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라고 선언 "교회의 동정녀가 이제 교회의 어머니가 되었다" | 교황 바오로 6세 |
1967 |
| ㆍ카톨릭 교회 내에서 오순절 은사운동이 시작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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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
| ㆍ에큐메니즘의 확산 ㆍ기독교인들을 "분리된 형제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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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 |
| ㆍ빌리그래함의 "Key 73" 집회를 기점으로 로마 카톨릭과 기독교의 최초의 중요한 합작이 시작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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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
| ㆍ교황 요한 바오로2세 - 21회에 걸친 세계 순례 ㆍ(미국, 한국, 중앙아메리카, 극동 지방의 국가들, 스위스, 캐나다 등 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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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
| ㆍ교황 요한 바오로2세 암살 미수사건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이 때 입은 심한 상처로부터 목숨을 구해 준 것이 마리아라고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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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
| ㆍ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성 베드로의 바실리카에서 마리아에게 이 세상을 봉헌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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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
| ㆍ마리아 숭배를 위한 해로 지정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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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교황이 진화론 인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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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이 말하는 세 가지 죄
대죄 - 구원을 잃을 수도 있는 죄
중죄 - 연옥에 이르게 함
소죄 - 성찬식의 은혜나 사제에게 고백성사를 함으로써 용서됨
트랜트 회의 내용 일부(1545-1563)
"사제(Priset)를 멸시하는 자는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며, 사제에게 복종하는 자는 곧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다. 사제들은 하나님처럼 죄들을 사면하며, 사제가 제단에서 그분의 몸이라고 부르는 것은 스스로와 회중에 의해 하나님처럼 숭배받는다..... 그들의 위대한 직분과 비교될만한 것이 무엇이랴. 이와같이 하나님의 불멸하시는 능력과 권위를 우리 가운데 행사하는 그들을 우리가 천사들로,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당한 표현이다."
"고해성사(고백성사)가 신의 명령에 의해 제정되었음을 인정하지 않거나, 그것이 구원에 필수요소임을 부인하는 자, 혹은 카톨릭 교회의 태동으로부터 준수되어왔고 지금도 여전히 준수되고 있는 관행, 즉 오로지 사제에게만 죄를 은밀히 고백해야 한다는 관행이 그리스도의 규정과 명령에 이질적인 것이라고 반박하며, 그 관행이 인간의 발명품이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sess, ⅩⅣ, can,ⅵ]
"사제의 성례전적인 사죄를 판결의 행위(a Judical act)라 하지 않고, 단지 고백한 부분의 죄가 용서되었음을 선언하고 공포하는 사역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래서 비록 사제가 엄중히 죄를 사면하지 않고, 가볍게 사죄하였다 할지라도, 자기 스스로 죄가 사면되었다고 믿는 자가 있다면, 혹은 통회가 사제로부터 죄의 사면을 얻기 위해 필수적인 것임을 부정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sess, ⅩⅣ, can,ⅸ]
"은혜를 덧입고 영생을 얻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들은 의인의 여러 선행과 금식, 자선, 고행 등이다."
"만일 의인이, 예수의 공덕과 그의 자비를 통해 신성한 명령들을 끝까지 잘 준수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 안에서 행한 자신의 선행을 연유로, 그가 자신의 영생을 보장받을 것을 기대하거나 바래서는 않된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만일 구원받는 믿음은 그리스도 때문에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의 자비를 믿는 것 뿐이라거나, 이 확신에 의해서만 우리가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sess, Ⅵ, can,?]
"마틴 루터의 모든 실수는 한마디로 '칭의'라고 말할 수 있는데, 바로 이 칭의로 말미암아 그는 성례전, 사제들의 권위, 연옥, 미사의 희생, 죄에서 용서함을 받는 모든 조치의 효력에 대해 단호한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와 대조적으로 카톨릭 교회의 몸을 세우려 하는 자는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단 교리를 전복시켜야만 한다." [Govanni del Monte, soon to be Pope Julius Ⅲ, at the Council of Trent, 1545-64]
1. 루시안이 처음으로 장로를 사제라고 부름 - 2세기
2. 시프리안이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를 만들어 냄 - 3세기
3. 죽은 자를 위한 기도 - A.D. 300
4. 십자가 형상을 만듦 - A.D. 300
5. 촛불 - A.D. 320
6. 천사, 죽은 성인들, 형상 숭배 - A.D. 375
7. 미사가 매일 드리는 예식이 됨 - A.D. 394
8. 에베소 공회를 통해 마리아를 높이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로 부르기 시작 - A.D. 431
9. 사제들이 특별한 옷을 입기 시작 - A.D. 500
10. 최후의 도유(치유를 위한 의식) - A.D. 526
11. 그레고리 1세가 연옥의 교리 확립 - A.D. 593
12. 예배 때 라틴어 사용 - A.D. 600
13. 마리아, 죽은 성인들, 천사들에게 기도 - A.D. 600
14. 최초의 교황(보니파스 3세) - A.D. 610
15. 교황의 발에 입맞춤 - A.D. 709
16. 프랑크 왕 페핀이 교황에게 세속 권력을 넘겨줌 - A.D. 750
17. 십자가, 형상, 유물 숭배 인정 - A.D. 786
18. 소금, 기름을 섞은 물에 사제가 축성해서 성수로 만듦 - A.D. 850
19. 성 요셉 숭배 - A.D. 890
20. 추기경 대학 설립 - A.D. 927
21. 교황 요한 13세가 종(鐘)에 세례를 베품 - A.D. 965
22. 교황 요한 15세가 죽은 사람들을 성인으로 선언함 - A.D. 995
23. 금요일과 사순절 금식 - A.D. 998
24. 미사가 점차 희생제사로 발전하고, 참석이 강요됨 - 11세기
25. 사제들의 독신생활 - A.D. 1079
26. 은둔자 베드로가 묵주 사용(이교도의 관행) 도입 - A.D. 1090
27. 베로나 공회 때 종교재판소 제정 - A.D. 1184
28. 면죄부 판매 - A.D. 1190
29. 피터 롬바르트가 일곱 가지 성사 확정 - 12세기
30. 이노센트 3세가 화체설 확립 - A.D. 1215
31. 이노센트 3세가 죄를 하나님이 아닌 사제의 귀에 들리게 고백하는 의식(화해의 의식) 제정 - A.D. 1215
32. 교황 호노리우스 3세가 성병 숭배 제정 - A.D. 1220
33. 발렌시아 공회 때 성경이 평신도들에게 금지되고 금서 목록에 포함됨 - A.D. 1229
34. 영국의 사이몬 스톡이 성의를 만들어 냄 - A.D. 1251
35. 콘스탄스 공회 때 평신도들은 영성체 때 잔을 받을 수 없게 됨 - A.D. 1414
36. 플로렌스 공회 때 연옥이 교리로 확정됨 - A.D. 1439
37. 트렌트 공회 때 교회의 전통도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정됨 - A.D. 1545
38. 트렌트 공회 때 외경도 성경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결정됨 - A.D. 1546
39. 교황 피오 4세가 만든 신조가 원래의 사도들의 신조 대신 공식 신조로 채택됨 - A.D. 1560
40. 교황 피오 9세가 마리아의 무염시태(죄없이 잉태됨)를 선언함 - A.D. 1854
41. 교황 피오 9세가 "유설표"를 공표하고 바티칸 공회가 인준함, 로마 카톨릭 교회가 승인하지 않는 종교, 양심, 언론, 과학적 발견의 자유를 정죄함, 교황이 세상 통치자들의 세속 권세 위에 권위를 가졌다고 인정함 - A.D. 1864
42. 바티칸 공회를 통해 믿음과 도덕적인 모든 문제에 교황의 절대무오류성 선언 - A.D. 1870
43. 피오 12세가 마리아의 몽소승천 선언 - A.D. 1950
44. 교황 바오로 6세가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 부름 - A.D.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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