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주님
본문 :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주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의 날이 가까워지자 제자들에게 거듭 거듭하여 당신께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시는 길을 제자들이 알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4절입니다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그러나 주님을 단순히 정치적 메시야로만 생각했던 제자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어디로 가실 것인지를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어떤 길로 가실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주님의 말을 이해 한 듯이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가운데 의심이 많으면서도 솔직했던 ‘도마’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가 의심스럽게 느겼던 것을 서슴치 않고 물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5절입니다.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그러나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가 없느니라“고 요한복음 14장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제자들은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려면 어떤 길로 가야 하는 지를 막연하게나마 알게 되었고, 주님의 십자가 대속(代贖)과 부활승천 이후에는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위에 이런 ‘도마’와 같은 자가 있다 하여도 그를 비웃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그런 그들로 인해 주님의 위대한 말씀은 선포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가운데 의심나는 점이 혹 있으면 주님께 기도하고 또 성경을 연구하여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 오늘 이 시간에는 ‘도마’의 질문으로, 선포된 주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주님은 어떠한 분이신지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길이십니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 ‘내가 곧 길’이라는 것은 천국에 갈 수 있는 통로라는 말입니다. 곧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천국 집을 개통해 주신 분이십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살 수 있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려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막히고 말았으며, 죄악 가운데 신음하다가 죽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담을 허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마련 해 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0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 하는 유일한 산 길이 되십니다. 혹자는 “천국 가는 길이 어디 예수뿐이겠는가?” 라고 말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방에서 서울 가는 길은 여럿이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 지체가 된다 할지라도 다른 길로도 얼마든지 서울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 가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오직 주님만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 말하기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라고 확신있게 선포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천국 길을 여신 우리 주님만을 믿고 의지합시다. 그리할 때 천국의 주인이시며 또 한 그 길의 개척자요 인도자이신 우리 주님은 우리를 안전하게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천국으로 인도 하실 것입니다.
두 번째,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8장 37절에서 빌라도의 재판정에서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빌리도는 “진리가 무엇이냐”(요한복음 18장 38절)하며 되물었습니다. 그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되 물었을 뿐 그는 진리를 믿거나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빌라도)가 진리를 알았다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진리란 과연 무엇일까요?
진리란 거짓이 없는 참 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하나님만 참된 진리가 되십니다. 하나님이 참된 진리가 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사람과 하나님을 비교 해 보면 하나님이 진리가 되심이 마땅합니다.
로마서 3장 4절에서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라고 했고, 예레미야 17장 9절에서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디도서 1장 2절은 영생의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을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 이라고 했고, 히브리서 6장 18절에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 진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는 당신이 곧 하나님이시다고 했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주님은 이 말씀 때문에 인간들의 정죄를 받아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진리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짓 없이 자신이 하나님임을 말 한 이유 때문에 거짓된 인간들이 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진리는 해방 받지 않습니다. 진리는 영원한 것입니다. 심히 거짓된 인간들은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써 진리의 하나님이 아님을 입증 하려 했지만 그분은 오히려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사 자신이 진리의 하나님이 되심을 만 천하에 증명하셨습니다! 로마서 1장 4절입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이것은 마치 갈릴레오 시대에 사람들이 지동설을 배척했으나 지구가 움직이는 것은 본래부터 변하지 않는 진리인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본래부터 주님은 진리셨으며 하나님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한다면 우리 주님께 먼저 나아와야 합니다.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신 우리 주님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먼저 만나지 않고서는 사랑의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0절입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예수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그러므로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진리의 하나님 곧 사랑의 하나님에게로 나아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진리 되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56장 16절입니다.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앞에 숨겨졌음이니라.”
세 번째, 에수님은 영생이십니다.
주님이 생명이라는 말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주님이 바로 생명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은 1장 14절에 보면 “그(예수) 안에 생명 있었으니”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1절을 보면 '태초에 말씀(예수)이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태초는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의 영원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생명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 그 자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생명 자체이십니다. 이 세상에 죽지 않는 생명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유통기한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은 이미 생겨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배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주님께만은 죽음이 없습니다. 아니, 죽어도 다시 사는 생명이십니다. 보십시오! 주님은 완전히 죽으셨으나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시지 않으셨습니까? 주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죽음에 머물러 있을 수 없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절에서 8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베드로)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주님은 분명히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망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이 생명이시기에 죽음이 그분을 주장 하지 못 했던 것입니다. 또 주님이 생명이라면 주님은 죽어도 안됩니다. 왜냐 그래야만 생명의 주가 되어서 생명을 나누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생명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 자기 생명조차도 온전히 보존할 수가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릅니다. 얼마든지 나누어 주고도 남는 분이십니다. 이는 그가 생명의 근원이시오,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미 그러한 생명으로 이 세상을 창조 하실 때 생명을 불어 넣으신 것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생명 그 자체십니다. 그분은 길, 진리, 생명 그 자체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1장 25절에서 26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러므로 존경하는 You시여!
생명을 갖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 예수를 믿으십시요! 그분과 연합하십시오! 그리하면 그분의 무한하신 생명이 You의 것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주님을 통하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구 누구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천국을 갈 수 없습니다. 주님만이 천국의 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믿어야 할지 아니면 믿지 말아야 할지 생각조차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분이 아닌 인생, 그분이 없는 인생은 길이 어디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생명이 어떠한지 조차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You! 부디 예수를 영접 하십시오! 서둘러 예수를 믿으십시오! 꼭 예수를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복이 You에게 임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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