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20)
할렐루야! 오늘도 은혜의 시간, 축복의 시간, 복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준비된 것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같을지라도, 준비한 자가 어린 아이 같을지라도, 하나님이 역사 하시면, 열두 광주리가 남는 풍성한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 뵈리아, 요단강 동편의 남부 지역을 치리하던 헤롯 안디바스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형제 빌립의 아내를 자기의 아내로 빼앗았습니다. 그것을 비난하는 세례 요한을 목을 잘라 죽였습니다. 이것은 앞으로도 자신을 거스리는 언행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처벌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요한이 죽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접한 예수님은 제자들과 배를 타시고 빈들로 나가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몰려들었습니다. 모여든 사람들,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신 예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고, 말씀을 전하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배가 고픈 사람들에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일으키셔서, 굶주린 배도 채워주셨습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전하게 되었고, 예수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살아 있을 때도, 빈 들에 요한의 말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 다녔었는데, 예수님이 또 말씀을 전하니까,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 다녔습니다. 헤롯 안디바스는 분명히 세례 요한의 목을 잘라 죽였는데, 혹시 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운 마음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갈릴리를 떠나,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도시로 들어가셨습니다. 본래 그 도시는 헐몬산 기슭에 있는 이름 없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한 도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헤롯은 조용하던 마을을 도시로 개발하여 로마 황제 가이사의 칭호와 자신의 이름을 따서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불렀습니다.
이 곳에 사는 주민의 대부분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원주민들은 풍요의 신인 바알을 섬기고 있었고, 헬라인들은 산림과 야수의 신인 판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헤롯은 황제 아구스도에게 아부하기 위해, 황제의 신전을 세워, 황제를 신으로 섬기도록 부추기고 있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그야말로 우상으로 가득 찬 불신앙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상숭배로 완전히 물들어 있던 그런 도시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상이 판을 치는 세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런 우상의 도시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물질의 풍요를 최고로 여기고, 끝없는 족보(명예)와 신화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 인간을 신으로 숭배하던 사람들이 사는 그런 도시에서, 물질을 믿고, 하나님은 거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그 땅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로 보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2년 동안,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자면서, 주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배우며 행하시는 모든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이 행하는 모든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은혜를 받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으신 것입니다.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주님을 믿고,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지난 세월 교회당에 나와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며, 예수의 이름을 붙들고 살아온 여러분은 주님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현재의 내 삶과 운명과 미래를 한꺼번에 바꿀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묻기 전에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3절)고 먼저 물으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것을 염려하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자신을 높게 평가하고, 왕을 삼으려고 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님이 먼저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시며, 갑자기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주저하거나 망설이지도 않고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14절)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 아니면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라고 생각한 것입니까? 세례 요한은 최고의 감동적인 말씀을 전한 위대한 설교가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광야로 몰려갈 정도로 그의 설교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감동적인 말씀을 전하셨기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어디를 가시든지 소경을 고치고,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는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엘리야처럼, 능력을 행한다고 여겨, 엘리야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선지자 중에 특히 많은 기사와 능력을 행한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가 기도하면 하늘이 닫히고, 그가 다시 기도하면 하늘이 다시 열릴 정도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무슨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만,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외계인 중에 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유대 민족을 사랑하여 많은 눈물을 흘리며 울며 기도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예레미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 선지자는 민족을 사랑하여 눈물을 많이 흘린 대표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디를 가시든지 늘 말씀을 선포하셨기에, 선지자 중에 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무슬림 교도들이 예수님을 한 명의 선지자로 여기듯이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천국의 비밀을 잘 가르쳐 주신 위대한 선생님이었으며, 누구보다도 많은 권능을 나타내신 분이었으며, 누구보다도 눈물을 많이 흘리시던 선지자 중에 선지자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순히 지적인 능력을 채워주시는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초능력을 행하는 초능력자도 아니십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은 선지자 중에 한 분도 아니요, 더 더욱이나 선교사 중에 한 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류에게 큰 가르침을 주신 훌륭한 선생님이요, 능력을 행하시던 분이요, 선지자 중에 한 분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 사람의 판단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확실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대답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특별한 사람으로,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놀람과 존경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뭐라고 말합니까? 어떤 사람은 2000여 년 전, 유대 땅에 살던 자로, 반역죄명으로 처형당한 사형수, 어떤 사람은 특별한 능력을 지녔던 신통한 사람, 어떤 사람은 사랑을 가르친 훌륭한 선생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겁쟁이 인간들이 만들어낸 종교에서 조작해낸 인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세례 요한이요, 엘리야요, 예레미야요,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한다고 제자들이 말하자, 주님께서는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왜 나를 따라 다니니? 너희들은 나를 무엇으로 생각하니? 너희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니?”라고 물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며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은 주님은 비록 사람의 몸을 입고 계시지만, 주님은 그리스도, 즉 우리의 영혼을 죄에서 건지실 구세주이시며, 참 하나님이라는 위대한 고백이었습니다.
한번은 프란시스가 뒷동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스승이 내려오지 않으니까, 제자들이 뒷동산에 올라가서 스승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뒷동산에 올라가보니 프란시스는 두 손을 마주잡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주님, 당신은 누구시오며, 나는 누구입니까?”라는 기도를 반복적으로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영국의 수필가 챨스 램은 “알렉산더 대제나 샤를마뉴, 나폴레옹이 이 방에 들어오면, 우리는 존경심에서 자리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신다면, 우리는 경배하며 엎드리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때 예수님을 지독하게 부인했던 옥스포드대 교수 C.S. 루이스는 “기독교 입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정신이상자, 지옥의 악마. 도적적인 스승이다. 반대로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하나님 아들이다. 누구나 엎드려 그렇게 고백해야 한다.”
이 분이 쓰신 글이 “나니아 연대기”입니다. 7권짜리 책인데요, 벌써 3권이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당시에도 구세주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많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내가 구세주요, 내가 메시야”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거짓 그리스도, 거짓 메시야가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베드로는 “우리가 기다리던 그 메시야, 바로 그 구세주가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 “메시야”라는 말입니다.
구약에서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은 선지자들과 제사장들과 왕들뿐이었습니다.
선지자는 말씀을 받아 선포하며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끄는 사람이었습니다. 제사장은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고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왕은 하나님의 왕권을 받아 백성들을 보호하며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주님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요”라고 고백한 것은, 주님은 기다리던 메시아임에 틀림이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실 유일한 제사장이며, 말씀으로 백성을 가르치고 양육하시는 참 선지자이시며,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며, 은혜와 사랑으로 다스릴 위대한 왕이요, 주인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제사장들이 얼마나 많았고, 선지자라고 자청하던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리고 헤롯왕처럼 왕의 권세를 가지고, 백성들 위에 군림하던 왕들은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주님을 향해 거침없이, 주님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며 주님만이 대제사장이요, 주님만이 참 선지자요, 왕 중에 왕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까? 예수를 그리스도로 발견한 사람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참 선지자로, 만왕의 왕으로 믿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그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주님을 향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유일한 그 아들이라는 뜻이기에,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곧 하나님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나시기 전부터, 하늘 보좌 위에 앉아계시던 하나님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이 이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도대체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직접 내려오셔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주님은 우리의 치명적인 죄 문제를 풀어 주시기 위해, 사람이 되어 내려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누구 앞에서도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거침없이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을 고백하며, 선포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달라지고, 이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변화되는 엄청난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위대한 신앙 고백을 드리자, 주님은 세 가지 엄청난 축복을 선언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엄청난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엄청난 칭찬과 엄청난 사명과 엄청난 권세를 누릴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칭찬을 받을 것이며, 엄청난 사명에 붙들릴 것이며,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엄청난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게 될 것입니다.
첫째, 주님은 베드로의 이름을 부르시며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니라” 아멘.
여기서 “바요나 시몬”이란 말은 “요나 곧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가리켜 새 이름인 “게바 곧 베드로”라고(요1:42) 부르지 않고,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부르신 것은, 베드로가 위대한 신앙고백을 했지만, 그 자신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향해 구주라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고백한 것은, 그 자신이 다른 사람들이나, 제자들보다, 똑똑하거나, 탁월한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시면서 주님은 베드로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위대한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베드로는 복을 받은 사람입니까? 그는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가장 위대한 발견을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위대한 발견은, 내 인생의 주인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주님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드로의 닫혀져 있던 눈을 뜨게 하시어, 주님을 바로 볼 수 있도록,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가장 위대한 것을 발견한 사람이었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하늘의 복을 받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주님은 또한 베드로에게 교회를 세우는 비젼과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1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아멘.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라는 공동체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교회가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교회만큼 주님의 사랑을 받는 단체는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거룩한 사람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님은 자신의 몸과 살을 찢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교회를 세우는 사명을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아니 그의 제자들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이 고백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피부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성격이 달라도, 주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이 말씀을 베드로라는 개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으로 오해하여 베드로의 뒤를 이은 교황이 다스리는 교회만이 진정한 교회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교회를 세우는 사명은 제자들에게 주셨지만, 주님이 직접,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결코 베드로의 교회나 그의 뒤를 이은 교황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못을 박고 계십니다. 그래야 음부의 권세가 감히 넘보지 못하는 주님의 교회가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주님은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맡기시며 그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그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큰 권세를 맡겨 주셨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권세를 주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래 하늘과 땅의 권세는 주님의 것인데, 주님은 그 권세를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천국의 열쇠를 맡기시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게 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제자들이 아무런 힘이 없는 무지한 어부들이라고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사람의 영혼을, 하늘나라로 이끄는 막강한 파워를 가진 하늘나라의 대리자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하늘이 막히게 될 것이며,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으면, 세상은 어둠 그 자체가 되어, 엉망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십니까? 저와 여러분의 구세주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내게 주신 축복의 사건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나 같은 죄인도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천하 만민 가운데, 예수 이외에는 구원 얻을 이름을 주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하십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나의 구원자, 나의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입에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끊임없이 터져 나와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신앙고백 위에 오늘의 교회는 세워졌으며, 또 이런 신앙고백을 하는 성도들 위에, 하나님의 교회는 더 든든히 서가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의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정말 믿고 순종할 수 있습니까? 아직도 아니라면 이 시간 믿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센 바람이 불어 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자꾸 닥칩니다. 그러면 주저 앉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도 나약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자꾸 닥칠수록, 더 믿음이 굳세어지고, 더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바람이 불면 돌아가는 풍차처럼, 바람이 세게 불면, 더 세게 돌아가는 풍차처럼, 더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주저 앉지만, 어떤 사람은 그 바람을 이용합니다. 어떤 사람은 풍랑을 보고, 실망하고, 좌절하지만, 풍랑을 타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언제 까지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비싼 생선을 먹거나, 오렌지를 먹는 일이 그리 흔치 않았습니다. 라면조차도, 요즘처럼 다양하거나, 많은 양이 유통된 게,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귀했고, 그래서 모든 것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정말 살기 편한 세상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슈퍼마켓에 나가면, 사시사철 없는 게 없고, 외국산 농산물까지 그득해서,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는다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잘 이해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다량의 상품을 유통시키다보니, 상품을 관리하는 수준도 꽤 높아져서, 식료품에서부터, 야채나 통조림까지, 유효기간이 표기되어 있고, 그래서 적어도 상한 물건을 사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런데 상품마다 표기된 “유효기간”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소리없이 웃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말이 사람에게도 적용이 되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점차 나이가 들면서 “때”라는 말이 갖는 의미를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다고 했습니다. 약국에 있는 약처럼 “몇 월 며칠까지”라는 표시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무도 그 유효기간을 모릅니다.
“날 때와 죽을 때, 울 때와 웃을 때, 슬퍼할 때와 춤출 때, 찾을 때와 잃을 때,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우리 인생의 유효기간이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도화지에 멋진 그림을 그리듯 그렇게 아름답게 삶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인생이지만, 그래서 더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유효기간이 끝나기 전에,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때마다 일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순간순간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믿음의 질문 앞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나는 그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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