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든든히 서 가는 교회(행 9:31)-20110306

하나님아들 2018. 8. 21. 21:20

든든히 서 가는 교회(행 9:31)

 

경남 지역에 신공항을 세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가덕도와 밀양 두 군데가 엄청난 파워게임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덕도가 좋을지, 밀양이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공항에 관련된 기사를 읽다가 눈에 들어오는 글이 있었습니다.

“수심 16m밖에 안되고 바닥은 단단한 암반층”

부산시가 구상 중인 가덕도 신공항은, 최근 개통된 거가대로(경남 거제와 부산 가덕도를 잇는 도로)의 종점인 가덕도 남동단 앞바다에 조성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신공항의 부지 면적은 서울 월드컵경기장 759개 넓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부지 전체가 바다를 메워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바다에 엄청난 흙을 쏟아 부어, 땅을 만든 다음, 그 위에 공항을 만든다는 것인데, 그 바다 밑은 단단한 암반층이라, 무너져 내릴 염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크고 넓은 공항을 만들어 놓아도, 쉽게 무너져 내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건물을 짓을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어디 일까요? 기초 부분입니다.

3월 3일부터 4일까지 서울 명성교회에서 있었던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목회자를 비롯하여, 교파를 초월하여 참석한 인원이 2,500명 정도였습니다. 지금 교회 본당은 3천명이 들어가는데, 새로 짓고 있는 본당은 8천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새로 짓고 있는 본당 건물을 들어가 보았는데, 건물 기둥이 아주 튼튼하게 보였습니다. 대충 기초를 해 놓으면, 나중에, 많은 인원이 들어갔을 때,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삼풍 백화점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 효성선교교회는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모든 목회자들의 바램이, 든든히 서가는 교회일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든든한 서가는 교회를 소망할 것입니다. 큰 태풍에 흔들리고, 작은 바람에 흔들린다면, 든든히 서 갈 수 없습니다. 뿌리가 튼튼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뽑히지 않습니다. 그런 든든히 서 가는 교회를 누구나 소망합니다.

김삼환 목사님이 이번에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목회란 끝까지 가는 것이다. 중간에 성장한 것이 아니라, 끝에 가서 좋아야 한다”

남들이 봤을 때, 크게 성장하고, 성공한 것 같은데, 끝까지 그것을 유지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가 든든히 서 갈 수 있을까요? 든든히 서 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여야 할까요?

 

목요일 저녁, 집회를 마치고, 강남금식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명성교회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러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고, 흐뭇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가 든든히 서 갈 수 있을까?”

며칠간 깊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31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아멘.

하박국 3:2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모든 목회자들의 바램이 있다면, 수년 내에 교회가 눈에 띄게 부흥하는 것입니다. 구름떼처럼 모여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초가 되어 있지 않으면, 금방 무너지고 맙니다.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평안하여야, 교회가 든든히 서 갈 수 있습니다.

 

샬롬! 여러분, 평안하십니까?

무엇보다도 마음이 평안할 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가진 것이 없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든, 아니면,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마음이 평안하면, 행복한 것입니다. 물질 때문에 주어진 행복이라면 그것은 참된 행복이 아닙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평안하십니까? 마음이 평안하십니까?

미국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던 여행자가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통순경에게 좋은 교회를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순경은 멀리 보이는 한 교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여행자가 주위를 둘러보니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순경에게, “왜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있는데, 저렇게 먼데 있는 교회를 가르쳐 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순경은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이 근처에 있는 교회들 보다도 저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훨씬 평안하게 보였습니다. 나는 불신자이지만 그 교회가 평안한 교회이고, 참된 교회인 것 같아서 소개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평안하기를 원합니다. 가정도 평안하기를 원하고, 국가도 늘 평안하기를 원합니다. 전쟁이 없이, 싸움이 없이 평안하기를 누구나 원합니다. 늘 싸우고 싶은 사람, 늘 전쟁하고 싶은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과 전쟁의 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려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서로 만나면, “샬롬”이라고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왜 “샬롬”이라고 할까요? 그들이 늘 바라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소망하는 것이 평안,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수천 년 동안 평화를 갈망해 왔습니다. 이방 국가와의 끝없는 전쟁으로 그들은 단 하루도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주변의 아랍 국가들과 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잊을만 하면, 테러가 일어나고, 어느 건물이 폭파되고, 그렇게 되면, 또 보복공격을 하고, 아직도 완전한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늘 불안한 가운데 살아가는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기독교 문화를 가장 화려하게 꽃 피웠던 나라가 어느 나라일까요? 러시아입니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카톨릭이 크게 둘로 나누어 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로마를 중심으로 하여 서방교회가 자리 잡았고, 러시아를 중심으로 동방정교회가 자리 잡았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당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보면, 엄청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들이 러시아에 엄청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화려했던 기독교 국가였던 러시아가 왜 공산주의에 넘어갔을까요?

“모든 국민을 동등하게, 평안하게 해주겠다”는 말에 모든 국민이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심각한 병이 있다고 합니다. 그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하는 겁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스트레스는 죽음의 치명적인 원인이 된다고도 합니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가장 큰 스트레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요, 불안함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우리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아직 올지, 안올지도 모르는 미래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불안하기 때문에, 긴장하고,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겁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에게 평안을 줍니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있으면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무섭지 않습니다.

소망에 대한 확실한 믿음만 있다면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내일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참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던 변호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네 자녀와 아내를 데리고, 영국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1873년 11월 15일, 뉴욕을 떠나 유럽을 향해서 가다가, 영국 근교 해협에 이르러 자욱한 안개 속에 앞을 향해서 오는 배를 보지 못하고, 두 큰 배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266명이 바다에 침수를 당했습니다. 그때 스탠포드 변호사는 자기의 네 아들을 물 속에서 잃어버리는 비극을 경험했습니다. 가까스로 부인과 둘이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그를 위로하기 위해서 수많은 가족들이 모여듭니다.

“힘을 내세요. 용기를 내세요”라고 위로하는 조객들에게, 이 스탠포드 변호사는 한 마디로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내 영혼은 평안합니다.”

조객들이 떠나간 후에 그의 마음 속에서 영감이 솟기 시작합니다. 찬송을 작사합니다. 찬송가 413장입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이 환경이 빼앗지 못하는 평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구름과 폭풍우가 빼앗아가지 못하는 이 기쁨이 있는 사람만이, 폭풍우 다음에 벌떡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내일을 향해서 도전하며 걸어갑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평안이라고 하는 것은 외적 환경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다 했는데, 그 당시 초대 교회는 외부적으로 엄청난 핍박을 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스테반이 그들 눈 앞에서 돌에 맞아 순교 당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었습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살벌한 지경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안하여”라고 합니다. 이러한 박해와 핍박과 모든 것이 열악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 어떻게 그들은 평안 할 수 있었습니까?

주님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33절을 보면,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환난을 안 당하기 때문에,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세상 살아가면서 많은 환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좋지 않는 일을 만나고, 몸도 망가진다고 해도, 주님과의 만남이 있으면, 마음이 평안할 수가 있습니다.

 

시편 27:1-3절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라고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얼마나 많이 도망 다녔습니까? 왕이 되기 전에는 장인 어른인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왕은 자기인데, 백성들이 다윗을 더 좋아하니까, 가만 두면, 왕 자리가 위태로워질까봐,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얼마나 쫓아다녔습니까? 왕이 되고 난 다음에는, 왕비를 여러 명 두었는데, 왕자들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암투가 있었습니다. “누가 다음 왕이 될 것인가”

조선이 개국할 때,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다니면서, 공을 가장 많이 세운 사람이 이방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배다른 제일 막내 동생에게 왕위를 물러 주려고 하자, 방원이가 동생들을 다 죽여 버리지 않습니까? 그러자 이성계가 왕 자리를 물러주고 함흥으로 가 버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윗의 아들이었던 압살롬은 아버지인 다윗을 죽이려고, 군사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자, 다윗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도망치고 맙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다윗은 주님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군대가 자기를 죽이려고 해도, 여전히 태연하다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기 때문에, 여호와는 나의 생명의 능력이시기 때문에 나는 무섭거나 두렵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27절을 보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야 평안할 수 있습니다.

어떤 유혹과 시험에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평안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있음으로, 늘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가는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우리 교회는 항상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는 교회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주를 경외하여야, 교회가 든든히 서 갈 수 있습니다.

 

“주를 경외함”은 성도로써의 본질을 말합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주를 경외하여야 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습니다”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교회라면, 든든히 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4:23-24절을 보면,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왜 찾으십니까? 어디서 찾으십니까?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는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고,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는 귀하고 복된 시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느낄 수 있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예배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때, 교회는 든든히 서 갈 수 있습니다.

 

셋째, 성령의 위로가 있어야, 교회가 든든히 서 갈 수 있습니다.

 

“위로”라는 말은 “힘을 북돋아 주는 것”입니다.

환난 속에서도, 우리가 설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적절한 때에 우리에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좌절할 수밖에 없고, 낙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나도 모르는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위로가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 맡은 과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과 위로하심이 없다고 한다면, 교회는 세상의 다른 어떤 기관이나 단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성령의 위로를 받아가면서 살아갑시다. 세상의 위로를 구하지 맙시다.

어찌하여 사람의 위로를 구하려다가 실망하고 넘어집니까?

 

성령의 감화와 감동에 의해서 움직이는 교회, 하나님의 성령이 다스리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오신 것은 성령의 위로를 받기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처음 신앙의 순수함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처음 사랑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성령의 위로를 최고로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상의 교회는 완성되지 않았고, 계속 완성을 향해 전진하는 교회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전진과 완성을 향한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완성된 신앙인격을 갖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주님의 손에 의해 “주님의 형상”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향해 계속 전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약점을 감싸 주어야 합니다. 보듬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덮어줄 줄 알아야 합니다.

평안한 교회, 주를 경외함이 있고, 성령의 위로가 있는 교회가 되어, 든든히 서 갈 때, 그 결과로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부흥이 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양적인 증가 뿐만 아니라, 질적인 증가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진실로 풍성한 증가가 있어야 합니다. 자라고 성숙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든든히 서 가는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으로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은, 주님의 교회가 든든히 서 가는 교회이기를 원하십니다. 흔들림이 없는 교회이기를 원하십니다. 생명있는 교회, 성장하는 교회, 풍성한 교회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교회를 피값으로 사셨습니다. 자신의 생명과 바꾸셨습니다. 교회를 든든히 서 가게 하는 이들을 주님은 가장 사랑하시며 가장 귀중히 여기시며 복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유대, 갈릴리, 사마리아 교회처럼, 우리 효성선교교회가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도 든든히 서서, 작은 환난에 흔들리지 맙시다.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이 주시는 평강과 위로를 힘입어 더욱 강건하게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사랑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맛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든든히 서 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 설교와 예화나라(한마음교회)
글쓴이 : 김종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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