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겔 47:1-12)-20110227

하나님아들 2018. 8. 21. 21:20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겔 47:1-12)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늘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풍성하신 하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듬뿍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하나님의 집에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못 받는다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는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 시간, 주의 제단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은혜를 듬뿍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멸망해가는 조국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눈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것이다. 우상숭배에 빠진 죄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될 것이다. 차라리 바벨론에 항복하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자”라고 외쳤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를 선포하는 예레미야는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파겠습니까? 조국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차라리 항복하자고 하는 그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조국의 멸망을 선포하면서, 한 가지 소망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70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하였습니다.

 

나라가 멸망할 때, 에스겔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포로생활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조국 이스라엘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돌아갈 조국이 없었습니다. 절망뿐이었습니다.

돌아갈 고향도 없이, 하루 하루 고달픈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에스겔을 찾아오셨습니다.

 

에스겔 40:1절에 보면,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임한 시기를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이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합니다.

에스겔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성소에서 흐르는 물에 대한 환상을 본 때는, “사로잡힌 지 스물 다섯째 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70년에서 25년을 빼면, 아직도 45년이 더 남아 있습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아주 캄캄한 시기입니다. 소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절망의 시대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조국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가게 되리라”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리라”,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세워지리라”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스라엘이 장차 회복될 것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지난 주 설교 제목이 무엇입니까?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였습니다.

지난 주 살펴보았던 에스겔 3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데리고 가셔서,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에스겔은 아주 지혜롭게 “주님이 아십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대답은 “주님만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살게 하는 것도 주님이시오. 죽는 그대로 놔두는 것도 주님 마음이십니다”라는 의미였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마른 뼈를 향하여,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더니, 마른 뼈들이 살아났습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에스겔 선지자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마른 뼈에게 들어갔습니다. 생기가 들어가자, 마른 뼈가 살아났습니다. 살아난 마른 뼈가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였습니다. 그 골짜기가 있던 모든 마른 뼈들이 다 살아났기에,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마른 뼈와 같은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절망 가운데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른 뼈와 같은 우리의 삶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고, 하나님의 영이 들어가면,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마른 뼈 골짜기 환상을 보여주셨던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데리고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조국 이스라엘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이 없이, 바벨론에 의하여 다 무너져 버렸는데,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성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회복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아멘.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전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주의 제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주의 제단이 무너지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주의 제단이 온전히 세워질 때, 은혜를 받을 수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성전이 무너져 버렸다면,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에스겔 8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환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환상입니다.

70인의 장로들이, 성전 안 사면 벽에 가증한 우상의 그림을 그려놓고 거기에 분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지도자들의 부패상으로, 자신들의 욕심에 사로잡혀, 종교생활은 하지만, 자신의 욕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포로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습니다.

성전 북문에서는 여인들이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고 있었습니다. 담무스는 바벨론의 풍요의 신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오직 자신들의 삶의 풍요와 안일함만을 위해, 담무스 앞에서 운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는, 약 스물다섯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세상에 빠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을 버리셨기 때문에, 자신들은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도움을 청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이 외관상으로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같지만, 그 마음은 온갖 욕심과 세속적 욕망으로 얼룩져 있다는 것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가증한 일들을 보고도, 탄식하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분이 기독교에 매력을 느껴서, 성경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정말 놀랍고 위대하신 분이시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를 닮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더 놀라운 일이다”라고 빗대어 말했습니다.

 

우리가 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를 닮아가지 않습니까? 왜? 우리의 삶이 회복되지 않습니까? 왜, 우리의 삶에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 없습니까?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하나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했는데, 왜 우리 마음 속에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것일까요?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서 우상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탄식과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2:13절“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멀리 해서는 안됩니다. 늘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만나기를 사모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간절히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듬뿍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신앙의 참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라고 노래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가는 삶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처음 나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딴 길로 가지 않고, 계속해서 교회에 나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한 눈에 보일만큼 듬뿍 받으셨습니까?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듬뿍 받으세요”

하나님의 은혜는 얼마만큼 많이 받아야 할까요?

 

1절 말씀을 자세히 보면,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라고 되어 있습니다.

물이 얼마만큼 많이 나오는 것일까요? “나와”라는 단어의 깊은 의미를 살펴보면, “조금씩 떨어져서”라는 말입니다. 듬뿍이 아니라 조금씩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구멍이 생겨서, 쏟아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이라는 것입니다.

성전 동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왔다고 했는데, 몇 방울의 물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비가 온 다음, 처마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처럼 그렇게 한두 방울씩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 마디로 교회에 나왔는데, 내가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를 정도로,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는 내린다는 것입니다.

 

“복 받으라. 은혜 받으라. 성령 받으라”고 해서 눈에 보일 정도로, 그렇게 복을 받고, 성령 받고, 은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은혜 받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정확하게 그 날과 그 시를 말할 수 있습니까?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 받았다” 정도입니다. 옛날에 은혜 받았기에, 지금은 은혜 받는 것이 필요없습니까? 아닙니다. 지금도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옛날에 받은 은혜는 그때 필요한 은혜입니다. 지금 필요한 은혜는 지금 받아야 합니다. 매순간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흘러내립니다. “흘러 내리더라”

 

찢어지게 가난한 한 여인이, 병든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포도를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의 정원에 매달려 있는 탐스런 포도송이를 발견했습니다. 여인은 동전 몇 닢을 간신히 마련해, 왕의 정원사에게 한 송이만 팔아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정원사는 매정하게 거절했습니다. 여인은 좀 더 많은 돈을 준비해서 포도를 사려고 했으나, 이번에도 역시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기를 수차례, 그 여인은 결국 절망 속에 빠졌고, 정원 입구 한 구석에 주저앉아 소리 높여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애절하고 서럽게 우는 여인의 통곡소리는, 마침내 정원을 산책하던 왕자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습니다. 이를 궁금히 여긴 왕자는, 여인에게 다가가, 왜 그리도 서럽게 울고 있는 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 여인의 사연을 다 들은 왕자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여인이여, 그대는 잘못 알고 있었군요. 내 아버지는 왕이십니다. 왕은 돈을 받고 파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자기 백성에게 거저 주시는 분이십니다.”

왕자는 포도나무에 달려있는 포도송이를 따서, 여인에게 주면서 빨리 아들의 병을 고치라고 위로했습니다.

왕자 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왕은 자기 백성에게 거저 주시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7:37-38절을 보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공짜입니다. 은혜의 생수는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는 주고, 누구에게는 안 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의 생수는 계속해서 흘러내립니다. 누가 마신다고 해서 내 것이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생수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흘러 흘러 내립니다. 멈추지를 않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흘러내리더라도, 계속해서 마시면, 듬뿍 마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듬뿍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온 물이 계속해서 흘러갔습니다.

3-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아멘.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온 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갑니다. 흘러가는 물을 따라 내려가다가 천 척을 측량했더니, 물이 발목에 올라왔습니다. 또 물을 따라 내려가다가 다시 측량했더니, 물이 무릎에 올라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허리에, 그리고 그 다음에는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헤엄칠 만한 물이 되었습니다.

물을 측량할 때마다 물의 깊이가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보통 강 같으면, 흘러가다가 여기 저기 지류가 합해져서, 강물이 불어납니다. 그러나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은, 오직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 자체로 불어났다는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나온 물이 어떻게 사람이 헤엄칠 만한 강물이 되었을까요? 사람이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다른 것이 필요없습니다. 성전에서 나온 물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다른 것이 필요없습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물이 발목에 이르렀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좇아 행하는 삶을 상징하며, 물이 무릎과 허리에 이르렀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더 풍성해짐을 상징하며, 물이 창일하여 헤엄칠 물이 되었다는 것은 성령충만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성전 중심으로, 교회 중심으로 살다보면,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발목 신앙이었지만, 계속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다 보면, 무릎 신앙이 되고, 허리 신앙이 되고, 풍성한 은혜의 강물 속에서 마음껏 헤엄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셋째, 강 주변에는 나무가 많았습니다.

7절 말씀과 12절 말씀입니다.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아멘.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아멘.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에스겔이 바라본 생명수가 흐르는 강 주변 풍경은 어떠했습니까? 강 좌우편에는 나무가 심히 많았습니다. 그 나무들은 대부분 과실나무였습니다. 그 잎이 시들지 않습니다. 열매가 끊이지 않습니다. 일년에 한번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달마다 새 열매를 맺었습니다.

충주에 가면,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사과나무를 심어 놓았습니다. 사과가 열 때에는, 따 가지 못하도록 지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사과는 일년에 한번밖에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사과가 열릴 때에는 참 멋있습니다. 달려 있지 않을 때에는 멋은 없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이 바라본 강 주변에 있는 나무들은 달마다 새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왜 달마다 새 열매를 맺습니까?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열매가 달려 있어도, 맛이 없다면 별반 소용이 없습니다.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시편 1:3절의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듬뿍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초청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8절을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참된 안식을 누리면서,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도 듬뿍 받아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받아야, 여러분의 삶에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받아야, 여러분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서울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 설교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태평양 발리섬에 “죠리링코”라고 하는 청년이 “사라타나”라고 하는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 결혼풍속은,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올 때, 암소 2-3마리를 주고, 신부를 데려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죠리링코라’는 청년은 암소를 8마리나 주고, 신부를 데려왔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많이 줄 수 있느냐? 얼마나 예쁘고 잘 생겼기에 암소 8마리나 주고 데려오느냐”

주변의 사람들은 신부를 보고, 또 놀랬습니다. 얼굴은 보통이고, 평범했기에 모두 놀랐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부터, 이 마을에 이 신부가 제일 아름다워지는 거예요. 제일 밝게 사는 거예요. 제일 기쁘게 사는 겁니다. 옷도 제일 잘 입는 거예요. 날마다의 삶이, 활기 있고 기쁨이 넘치는 거예요.

그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귀하다’라는 거예요. 나는 3마리짜리 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남편에게 물었답니다. “당신, 어떻게 그렇게 많이 주었냐?”

“나는 신부를 사랑하기 때문에, 8마리도 아깝지 않고, 80마리라도 주고 싶다”

소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죄 많고, 보잘 것 없고 비천한 우리를 주님의 신부로 삼아 주었습니다.

그것도 금이나 은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지불하면서 까지 말입니다.

“나는 주님으로부터 너무 귀한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언어가 변하고, 생활이 바뀌고, 그래서 삶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만나게 되면, 우리의 삶에 기쁨이 넘치고, 행복이 넘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갑니다. 어디까지 흘러갑니까? 바다까지 물이 흘러갑니다.

물이 흘러흘러 바다에까지 흘러 들어 갔는데,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넷째, 물이 흘러가는 곳에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8-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 아멘.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곳에는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요한복음 10:10절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5:16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곳마다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열매 맺는 역사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우리의 형편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사면초가라 할지라도 살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흑인 성악가수 “마리안 앤더슨”의 일화입니다.

그녀는 너무 가난해서 노래를 배울 수조차 없는 처지였지만, 노래를 너무나 잘 불렀기에, 교인들이 후원회를 조직하여 공부를 시켰습니다. 마침내 음악가가 되어, 뉴욕의 맨해튼 홀에서 발표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발표회가 끝난 뒤, 많은 백인 기자들이 신문에 악평을 써댔습니다. 마리안 앤더슨은 실의에 빠져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겠노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때에 그녀의 어머니가 찾아와 이런 말로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라”

그래서 마리아 앤더슨은 늘 그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로 결심하고 노래를 불렀더니, 청중들이 감동을 받아 열광을 하게 되더랍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품고 살아가는 자가 된다면, 우리 주변이 더 풍성하게 될 줄 믿습니다.

마리아 앤더슨이 조그만 도시에서 공연을 갖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난한 한 소녀가 호텔에서 일을 하다, 깜박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 흑인 중년부인이 “너 외로워 보이는구나”라고 말하며 서 있었습니다.

“네, 오늘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마리아 앤더슨의 공연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일해야 했기에...”

소녀가 말하자, 중년부인은 소녀의 손을 잡으며, 나즈막히 노래를 불렀습니다. 소녀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마리아 앤더슨이군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집인 교회는 은혜의 강물이 흐르는 곳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마실 수 있어야 합니다. 한번만 받아 마시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 믿음 뿌리 내리고 주의 뜻대로 주의 뜻대로 항상 살리라

주의 시절을 좇아 구원 열매 맺으면 주의 영화로운 빛 너를 보호하리니 주의 뜻대로 주의 뜻대로 항상 살리라”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듬뿍 받음으로, 달마다, 때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의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감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 설교와 예화나라(한마음교회)
글쓴이 : 김종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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