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회사!!

[스크랩] 초대교회와 유대교

하나님아들 2018. 6. 29. 21:29

초대교회와 유대교




이제 우리는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들의 범위와 규모, 성전과 절기, 그리고 회당의 역할 등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1.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범위와 규모



디아스포라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지 7주 후인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많은 예배자들이 여러 나라들로부터 모여 들었습니다. 사도행전 2:9-11에 언급된 그 나라들이 유대인의 흩어짐(diaspora)이 광범위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흩어진 유대인들은 오순절 후, 로마에 교회를 시작했고, 사도 바울의 이방선교에 가장 중요한 발판이 되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디아스포라의 거주지를 지도에서 찾아 보면 그 흩어짐이 얼마나 광범위했던 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소보다미아와 인접한 땅에서 주전 8세기부터 6세기까지 앗수르와 바벨론 포로 이후로 계속 살아왔습니다. 유대인들의 애굽 정착은 주전 6세기, 남유대 멸망 후 비롯되었습니다 (열하 25:26). 알렉산더 정복으로 더 많은 유대인들이 애굽 지역, 특히 알렉산드리아(알렉산더에 의해 주전 331에 건설됨)와 구레네에 정착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시의 다섯 구역 중 한 구역은 유대인들 뿐일 정도로 애굽에 있던 유대인구는 확실히 대단했습니다. 톨레미왕조와 셀루키드 왕조는 모두 정복지의 충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유대인들 정착을 적극 장려했습니다. 유다 마카비시대에 유대가 로마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부터, 주전 63년에서 59년, 폼페이가 유대를 점령한 후, 상당히 숫적으로 늘어난 유대인들이 로마에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로마 사회에 서서히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어 기독교교회 시작 당시 로마의 유대인들은 4-6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2. 예루살렘 성전과 유대인 절기



유대인의 삶의 중심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주전 950년 경 여호와 하나님(Yahweh)을 위해서 웅대한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러나 우상숭배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으로 주전 587년 갈대아 군대에 의해서 이 성전은 불에 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하신 말씀대로, 꼭 70년 후, 스룹바벨과 스가랴, 그리고 학개 선지자의 독려를 받아, 첫 성전보다 수수한 제 2성전이 다시 지어졌습니다. 제 2성전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주전 167-164년까지 3년간 유린되었으나, 마카비 혁명으로 다시 정결케 되어 봉헌되었습니다. 헤롯은 주전 19년부터 다시 복구하여, 그 복구사업은 주후 63년경에야 끝났으나 주후 70년, 로마군대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신약배경사를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경고의 말씀이 일점일획도 남김없이 다 응하는 것을 목도하시기 바랍니다. 유대전쟁으로 주후 70년 성전이 무너지기 전까지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매일 제사장들이 번제와 소제, 전제, 그리고 안식일과 월식, 절기 등을 통해 많은 제물을 이스라엘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셨을까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무리들이 바친 가증한 것이지요. 아뭏튼 이스라엘에는 3대 절기가 있었습니다. 1) 칠일간 지키는 무교절 (춘분 무렵, 유월절에 시작). 2) 이로부터 7주 후에 지켰던 오순절, 그리고 3) 초막절 (추분무렵)이 그것입니다.



무교절은 어떤 절기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낳는 아기 중에 아들은 모두 물에 빠트려 죽이던 무서운 이집트의 학정 아래서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이집트의 장자들을 죽음의 천사들을 보내사 죽이심으로 심판하셨습니다. 바로 그 때, 이스라엘 장자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양의 피를 문지방에 바르게 하셨던 첫유월절을 기념하는 절기가 무교절 (the Feast of Unleavened Bread)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면서 (출 12:39) 구웠던 무교병을 기념하여 무교절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오순절은 (the Feast of Pentecost),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 것을 (출 19이하)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초대교회는 그 생일을 오순절로 잡는데, 이는 그 날 성령께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합심하여 기도하던 120명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강림절이라고도 하는 기독교의 오순절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법을 우리 심령의 비에 새겨 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초막절 (the Feast of Tabernacles)은 이스라엘인들이 광야에서 거주했던 천막을 기념했습니다(레 23:42). 초막절의 의미는 초대교회와 기독교회에서 어떻게 기념되었을까요? 광야생활을 기념했던 초막절은 교회가 천성을 향해가는 무리들의 모임으로, 우리의 고향은 이 세상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인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조: 고후 5:1-2). 이스라엘 모든 남성들은 이 세 절기에 성소에 참여하도록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대다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들 절기에 예루살렘에 오기를 힘썼어요. 그들과 함께 몇몇 개종자 (proselytes)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 (sebomenoi)"도 오곤 했습니다. 성전 봉사는 20세이상 유대 남성들이 내는 반세겔 인두세에 의해 유지되었습니다.



세계 각처에서 세금을 내었던 것입니다. 세금은 한 세겔에 해당하는 두로의 은 드라크마였고, 유대인 두명이 한 조가 되어, 이 동전으로 인두세를 내었답니다. 마태복음 17장 24-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와 너를 위하여" 세금 징수관에게 주도록 명하신 것은 바로 그런 동전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점차 이러한 수익이나 보수들 중 가장 큰 몫을 독점해서 대제사장 아나니아 때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성전을 가리켜 아래와 같이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마태 21:13).



당시 대제사장들은 강도들의 무리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들의 폭정의 그늘 아래, 일반 제사장들은 절망적 궁핍가운데 고통하고 탄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 대한 원성은 매우 높았고, 열혈당원들은 주후 70년경 대제사장을 찔러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예레미야 5:31에는 기울어가는 다윗왕조에 빌붙어 타락해가던 유대교지도자들의 타락상을 질타하는 예언의 말씀이 이러한 타락한 모습을 잘 예언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예레미야 5:31)



3. 회당의 역할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성전보다 회당(synagogue)이 그들 종교생활 중심에 있었습니다. 회당예배에는 율법을 읽는 것과 해석하는 것이 순서에 들어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동부에서는 히브리어 낭송 외에 아람어 (targum)로 1년 주기로, 서부 헬라 사용지역에서는 3년주기로, 70인역본이 사용되는 가운데, 율법을 연속 통독했다고 합니다. 회당의 기원은 포로생활 중, 모여서 특정한 기도문 암송과 시온의 노래들을 하는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후 회당은 발전하여,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에서까지 유대인 생활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기도와 찬양들이 성전 예식에서는 부속적이었으나, 회당예배에서는 필수적 요소가 되었습니다. 회당예배에는 율법을 읽는 것과 해석하는 것이 순서에 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보내신 갈릴리에도 회당이 있어서, 누가복음 4:16-30에 보면, 나사렛의 회당에 안식일날 가셔서 이사야 61:1-2 말씀을 읽으신 후, 그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응하였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메시야로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고향 사람들은 자기들이 잘 아는 요셉의 아들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어 도리어 예수님을 낭떠리지에 밀쳐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저희를 유유히 지나 가셨습니다. 이 말씀은 육신의 눈으로 예수님을 주로 알 수 없음을 잘 보여 줍니다. 바울은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만이 우리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함을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고전 12:3). 예수님의 사역과 사도들의 선교활동의 무대로서 회당예배는 유대 역사의 한계를 넘어서 초대 기독교 예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회당의 순서였던 기원, 기도, 감사, 성경 낭독, 권면, 축도는 처음부터 기독교 예배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들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 예배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적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Eucharist)이 독특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그들의 회당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하나님과 그 종교에 대한 지식을 모든 이방 도시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행 15:21). 주후 70년 유대전쟁으로 성전과 그 제식(祭式)이 끝났을 때에도 유대주의가 살아남은 것은 바로 유대 공동체 생활 속에서 성전의 역할을 회당이 이미 전적으로 대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새 도시에 갈 때마다 그 곳 회당을 찾아가서 그것을 그들의 선교활동의 근거지로 사용하였습니다.



4. 회당과 경건한 이방인들



많은 회당의 회중들 가운데는 유대인들과 개종자들(이방 종교에서 유대종교로 개종한 자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행 13:16).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대표적 인물로 가이사랴 백부장 고넬료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 하였습니다 (행 10:2). 할례라든가 음식규례같은 복잡한 유대의식을 지켜야만 이방인들이 유대인들로 개종이 가능했습니다. 이에 반하여, "경건한 자들"이란 그런 유대 규례에 억매이지 않으면서도 회당에 참석하는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전문적 명칭이었습니다.



바울이 회당을 방문할 때마다 그러한 경건한 자들에게 복음은 즉각적 호소력을 발휘했습니다. 이는 복음이 그들에게 할례나 모세 율법의 문자적 복종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을 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죄와 죽음의 권세로부터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됨을 약속하는 복음을 바울이 전했던 것입니다. 유대인 회당 당국은 바울을 곧바로 쫓아 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항상 유대인회당을 그 선교활동의 가장 좋은 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어느 도시에 가든지, 꼭 회당을 먼저 방문하여, 거기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무리들, 곧 회당의 가장자리에 있던 “경건한 자들”에게서 교회의 핵심인물들을 발견해 낸 것입니다.



5. 구약의 정경화 과정



히브리성경의 최종적 한계는 주후 70년 이후,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 ben Zakkai)와 그의 추종자들의 지도 하에 dia니아(Jamnia)에서 있었던 유대 율법학자의 산헤드린에서 최종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성경이 율법과 예언서, 그리고 성문서로 삼분된 것은 예수 벤 시라의 손자 시대에 이미 되어진 것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경 범위에 대한 이해는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순교자의 피에 관하여,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눅 11:51; 마 23:35)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 예수님은 히브리성경에 대하여 당시 유대인들이 배열하는 전통을 좇아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예언서, 역대기 순으로 이해하고 계심을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가르치심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막 12:27)에 대한 그의 아들로서의 독특한 통찰을 하나님의 신실한 말씀에 기초하여 해석하십니다. 40일 광야에서 금식하신 후 예수님이 사단과 대결하실 때, "내가 생각하기에는"라고 하시지 않고,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신 후 하나님 말씀을 인용하시어, 세 번의 사단의 유혹을 말씀으로 물리치심은 하나님 말씀이 진리이심과 그 말씀을 의지할 때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십니다 (마태 4:1-11).



예수님의 생애와 초대교회의 배경이 되었던 유대인들의 회당을 중심으로 했던 삶과 신앙이 좀 실감있게 이해되는지요? 성전 중심에서, 점차 회당중심으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모였음은 이방인을 위한 바울 선교의 중요한 선교 거점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다음에는 박력있고 흥미진진한 세례 요한의 삶에 대하여 공부하려고 하니 기대하십시요

출처 : 메타-성경신학연구회
글쓴이 : 펄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