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상식 이야기!!

[스크랩] 단어의 의미 / 오광만의 성경해석 3

하나님아들 2017. 1. 17. 00:27

 

 

단어의 의미

오광만의 성경해석 3
2001년 06월 01일 (금)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오광만  교수/  장신 신학원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지 어떤 사물과 동작에 대해 자기들 나름대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른 나라 말로 옮겨놓았을 때 원어로 표현한 것을 수용언어가 그대로 옮길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흔히들 번역이란 원어로 표기된 단어를 그것과 같은 의미에 해당하는 수용언어의 한 단어로 옮겨놓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우리가 사용하는 번역 성경에서도 그것을 어떻게 잘 옮겨놓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원어의 어떤 단어는 그 단어가 등장하는 곳마다 똑같은 단어의 수용언어로 표현되어 있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성경의 의미가 모호해지거나 본문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수가 많습니다. 단어의 의미는 그것 자체에 고유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다른 단어와의 관계에서, 또 그 단어가 사용된 앞, 뒤 문맥에서 결정되는 법입니다. 일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성경에 "알다"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는 "야다"이고, 헬라어로는 주로 "기노스코"가 사용되었습니다. 대부분 한글 <개역성경>에서는 이 단어들을 거의 모든 경우에서 "알다"라고 번역하여 그 단어가 등장하는 본문의 의미가 잘 전달되지 못하였습니다. 원어를 조금 아시는 분들은 "원어의 '알다'라는 단어는 부부 관계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것처럼 친근한 관계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실례로 창세기 4:1의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에 사용된 단어가 바로 이 '알다'인 것입니다"라고 설명을 하는 정도로, 성경의 모든 "안다"는 단어를 도매금으로 이런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어의 "야다"나 헬라어의 "기노스코"라는 단어의 의미는 다양하므로 문맥에 따라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하는 번역을 해주어야 합니다. 실제로 예를 들어봅시다. Baur-Arndt-Gingrich의 사전으로 알려진 헬라어 사전(A Greek English Lexicon)에는 헬라어 "       "의 의미가 무려 일곱 가지나 열거되어 있습니다.

 

첫째, know, come to know(알다, 알게 되다)의 의미로 사용된 예. 마태복음 12:33 -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로마서 1:21 -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마태복음 25:24 -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등입니다. 이 예들에서 "안다"는 것은 어떤 정보를 새로이 얻는다는 의미의 "안다"를 뜻합니다.

 

둘째, learn, ascertain, find out(배우다, 확실하게 하다, 살펴보다)의 의미로 사용된 예. 요한복음 4:1 -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 지라"(소문으로 정보를 얻었음), 사도행전22:30 -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골로새서 4:8 - "너희에게 보낸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등의 경우입니다. 전에 희미한 지식을 갖고 있던 것을 확실하게 하다는 의미의 "안다"입니다.

 

셋째, understand, comprehend(이해하다, 깨닫다)의 의미로 사용된 예. 마가복음 4:13 -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누가복음 18:34 - "깨닫지 못하였으니 …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요한복음 3:10, 12:16, 7:49 - "네가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 일을 알지 못하느냐?" 어떤 진리나 정보와 관련하여 깨달음이 있다는 의미로 "안다"를 사용한 경우입니다.

 

넷째, perceive, notice, realize(인식하다, 주시하다, 파악하다)의 의미로 사용된 예. 마태복음 22:18 -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문제와 관련하여)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요한복음 4:53 - "아비가 예수께서 …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 다 믿으니라"로서 어떤 것을 인식하고 상황을 파악한다는 의미를 표현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다섯째, euphemism of sex relations(성관계를 에둘러서 말하기)의 의미로 사용된 예. 마태복음 1:25 - " 동침치 아니하더니," 누가복음 1:3 -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누가복음에는 원어의 단어 그대로 사용하여 "알다"고 표현한 반면, 마태복음에는 아예 "동침하다"라는 실제적인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여섯째, have come to know(속속들이 알다, 헤아려 알다)의 의미로 사용된 예. 누가복음 16:15 -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로마서 2:18 -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고린도후서 5:21 -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마지막의 예는 "경험하다" 또는 "짓다"는 뜻(즉 "죄를 짓지 않으신 분으로"의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일곱째, acknowledge, recognize(인정하다, 인식하다)의 의미로 사용된 예. 요한복음 1:10 -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으며." 세상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식하거나 인정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어도 헬라어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알다"는 단어가 성관계를 맺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예는 창세기 4:1의 "아담이 그 아내와 동침하매"라는 표현일 것입니다. 이것은 가인을 낳기 위한 전 단계의 동작을 가리키므로 분명히 "동침하다"(have intercourse)의 의미이지 자기 아내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알았다"(knew)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런 의미의 "알다"라는 사용은 비단 히브리어에서만 있는 현상은 아니고 우리나라 말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쟤는 시집은 안 갔다 뿐이지 알 건 다 아는 애야"라든가, "저 처녀는 이미 남자를 알아버렸어"라는 것도 우회적으로 "이성과 성관계를 갖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의미의 "안다"는 것이 히브리어나 헬라어에만 있는 표현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 경우 여기서 "안다"는 말은 그것 자체에 "동침하다"라는 것이 있어서 그런 의미를 지닌다기보다는 "시집가다"와 "남자를"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런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또한 아모스 3:2의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I have chosen)거나 "사랑하셨다"(I have loved)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알다"가 사용된 예입니다. 시편 1:6에 사용된 "알다"라는 동사에 대해서는 <개역성경>에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로 설명적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살펴보신다"(watches over)거나 "사랑하신다"(loves)를 의미하지 "성관계를 맺는다"거나 어떤 사실을 "안다"는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그밖에 히브리어의 "안다"는 말은 배우다(창 3;22), 파악하다(창 19:33; 삼상 12:17), 구별하다(삼하 19:36), 경험으로 알다(수 23:14), 인식하다(렘 3:13)는 의미를 표현합니다. 그것은 이런 단어가 의미의 폭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의미가 다양한 단어를 한글 <개역성경>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안다"고 표현하였으니 우리가 본문의 의미를 알기 위해 적어도 이 단어가 등장하는 경우마다 실제로 어떤 행동을 표현하려고 이 단어를 사용했는지 질문하면서 각각의 경우의 정확한 의미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안다"는 단어를 문장에서 실제로 사용된 의미를 분명히 밝혀 표현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단어가 문장에서 다른 단어와의 관계성 속에서 의미가 규정된다는 사실은 바울 사도의 글에 표현된 "육" 또는 "육체"라는 단어 사용에서 극에 이릅니다. 한글 <개역성경>에 "육체"로 번역한 단어는 헬라어로 싸륵스입니다. 이 단어가 다른 번역 성경에 어떻게 다양하게 번역되었는지를 도표를 통해 비교해보면, 현재 한국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성경의 의미 전달이 얼마나 모호한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로 든 본문은 갈라디아서이고, 이 본문을 번역한 대조 성경은 가장 문자적으로 번역한 성경과 의역 성경 그리고 역동적 대응으로 번역한 성경의 대표인 영어 번역과 한국어 번역 성경을 뽑았습니다.

 

이 비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육체"가 어떤 경우에는 몸으로, 사람으로, 죄성으로, 사람의 노력이나 애쓰는 것으로, 겉모습 등등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고린도후서 5:16의 "육신대로"라는 표현은 "육신의 잣대로" 또는 "세상의 표준대로"라는 의미로 바꾸어 써야 의미가 바르게 통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로마서 11:14의 "내 골육"이라는 표현은 "내 민족"(people of my own race)으로 고쳐 쓰는 것이 본문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하게 합니다. 물론, 육체가 우리의 몸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된 경우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7:5이 그 좋은 예입니다. 바울은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라고 썼는데, 이것은 "우리 몸이 불편하였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바울 사도의 글에서 "육체"는 새 시대의 성령과 대조되는 질서인 옛 시대 또는 옛 시대에 속하여 사는 사람들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신학적인 의미를 지니는 단어로 사용된 경우가 많습니다. 갈라디아서 5:16에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영어 NIV 성경은 이것을 "live by the Spirit, and you will not gratify the desires of the sinful nature"라고 옮겨놓았습니다. 즉, 여기서 "육체"는 성령과 대조되는 "죄악된 성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나쁜 성품이라는 의미 이상의 무엇을 의미합니다. 다시 바울 사도가 쓴 로마서에서 한 본문을 인용하겠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 4). 육신은 여기서 율법이 활동하던 시대를 대표하는 말로서 사용되었고, 이와 대조되는 것이 성령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육신을 사용한 다른 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전 15:50),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고전 2:14)와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1, 3) 등입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단어는 그 단어가 등장하는 전후 문맥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정독하고, 본문이 있는 앞, 뒤 상황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번역성경이 다양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이런 단어 처리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는 데 있으니 보다 적극적으로 번역성경을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6월호)

출처 : 생명나무 쉼터
글쓴이 : 둥지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