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맥과 성경해석 | ||||
| 오광만의 성경해석 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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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만 장신신학원 교수
논리적인 문맥
지난 호에 이어 문맥 이해의 중요성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 앞 뒤에 있는 배경적인 문맥은 저자의 생각의 흐름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것을 논리적인 배경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 본문의 글의 흐름을 잘 파악하여 저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귀 기울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선 독자는 저자가 그의 글에서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글을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논리적인 배경과 관련하여 아래의 내용에 대해 주의를 하시기 바랍니다. 문맥 이해의 몇 가지 단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본문과 본문이 나온 문맥에 익숙하기
이사야 34:16은 우리 주변에서 문맥과 상관없이 견강부회 해석을 하는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에서 “그 짝“을 신, 구약의 예언과 성취의 짝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앞, 뒤 말을 읽지 않고 본문을 이해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34:1에서 시작된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8~15에 에돔이 황무해지고, 그곳이 사람이 살지 않게 되는 대신 짐승들이 거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판결에 비추어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런 심판의 선언에 코웃음을 치고 어떻게 여기에 언급된 동물들이 사람이 사는 곳에 짝을 이루면서 살겠느냐고 반문합니다. 하나님의 선언대로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신빙성이 있는가?“ 이에 대하여 34:16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입증할 수단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 말씀은 앞으로 발생할 일을 예언자의 시각에서 확실하게 선언하는 표현법을 사용한 예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선언대로 동물들이 빠진 것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2. 본문의 한계 재확인하기
이사야 34:16 본문 이외에도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문맥을 무시하여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할 위험이 많은 본문은 에스겔 47:1~5(12)입니다. 이 본문은 47:1~5과 47:6~12이 환상의 내용과 환상의 해석이라는 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예루살렘 성전이 폐허가 되어 그곳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복 주심이 중단되었지만 다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세우실 것이고, 그 곳에서 전과 같이 복과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런 표상을 생명에 대한 상징으로 그들 속에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에덴 동산의 모습을 빗대어(창 2:10~14) 표현하는 것입니다. 에덴이 온 세상에 생명의 물을 공급하는 물 근원이었듯이, 성전이 팔레스타인 주변, 특히 죽음의 대명사인 아라바 지역을 낙원화 하는 물 근원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에스겔 47장 본문의 중요한 사상이고, 1~5절은 환상이긴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풍성한 물이 흘러나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6절 이하의 내용을 무시하고 1~5만 읽을 때 “신앙의 깊이의 단계“ 내지는 “헌신의 단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문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본문이 들어 있는 광범위한 문맥에서 읽기
4. 글의 논리 따라가기
이 글의 저자인 바울은 9:1에서 “내가 …가 아니냐?“라는 물음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기서 그가 열거한 내용들을 강하게 주장하기 위해 역으로 부정의 질문을 한 것입니다. 2절에서는 양보절을 제시하고 1절에서 질문한 것을 이번에는 강하게 긍정하는 발언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제시됩니다. 3절에서 바울은 왜 고린도 교회에게 자신이 1절과 같은 도전을 받게 되었는지 그 상황을 설명합니다.
바울은 다시 4-6에서 수사의문문을 사용하여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에 대해 변호합니다. 이번에는 인간사회에서 통용되는 예(7절)와 성경적 근거(8~10절)를 통해 의당 기대할 수 있는 행동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두 가지 근거에 의해 어떤 조건이 주어졌을 때 결과를 요구할 수 있다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전혀 과하지 않다고 전제합니다(11절). 바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통상의 경우가 이렇다면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관계에 비추어 자기가 고린도 교회에게 더욱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주장합니다(12절a).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이 그에게 많이 있었지만 이것을 쓰지 않았습니다!(12절b). 그것은 복음 전파에 방해를 받지 않으려는 것 때문이었다는 것이 바울의 주장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바울은 자신이 복음 전하는 자들은 복음으로 산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며(13~14절), 복음 전파하는 그의 당위적인 사명 때문이라고 변증합니다.
(15~18절). 본문은 바울이 사례비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바울의 사도권에 도전을 가하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바울의 사도성을 주장하면서 바울이 그런 요구를 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위에서 제시한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고린도전서 9장의 논의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의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 관찰해야 하는 몇 가지 어구들을 소개합니다.
1) 시간적 연결과 상황 연결 어구들: ?후에(계 1:11)/ ?때에(행 16:16)/ ?전에(요 8:58)/ 지금, 이제는(눅 16:25)/ 그 때에(고전 15:6)/ ?때까지(막 14:25)/ 되자(요 11:31)/ 동안에(막 14:43)
3) 논리적인 연결 어구들: 이유를 나타내는 어구 - 왜냐하면(롬 1:25)/ 때문에(롬 1:28)// 결과: 그런즉(롬 9:16)/ 그러면(갈 2:21)/ 그런즉(고전 10:21)/ 곧(고전 8:12)// 목적을 나타내는 어구 - ?하기 위하여(롬 4:16)/ ?하기 위하여(롬 5:21)// 대조: ?하되(롬 1:21)/ 그러나(롬 5:15)/ 그러나(롬 2:8)/ 그러나(고전 10:5)/ 그렇지 아니하면(고전 14:16)/ 그러나(롬 5:14)// 비교를 나타내는 어구 - 또한(고후 1:11)/ ?처럼(롬 9:25)/ ?처럼 그렇게(롬 5:18)/ ?처럼 바로 그렇게(롬 11:30~31)/ ~과 같이(롬 1:27)/ 그렇게 또한(롬 4:6)/ ?보다도// 사실의 연속을 나타내는 어구 - 그리고(롬 2:19)/ 첫째로(딤전 2:1)/ 맨 나중에(고전 15:8)/ 또한(고후 6:15)// 조건을 나타내는 어구 - ?라면(롬 2:19)// 양보 - 비록?일지라도// 강조를 나타내는 어구 - 참으로(롬 9:25)/ ?뿐(고전 8:9)// 수단?방법// 원천// 영역(범위)// 장소// 소유 등등이 있습니다. 노튼 스테렛의 <성경해석의 원리>(성서유니온 출간) 35~41쪽도 참조하십시오.
5. 글을 쓰는 저자의 심리적인 상황 이해하기
어떤 사람이 외출했다가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열면서 “여기 먹을 것이 하나도 없잖아“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그는 비어 있는 냉장고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음료가 없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적인 언급보다는 자신의 심리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처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의 심리적인 상태를 과장법을 빌어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 저자나 심지어 성경의 주요 화자인 하나님이나 예수님도 그런 의도로 말씀하신 적이 종종 있습니다. 마가복음 4:40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고 말씀하신 대목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믿음이 하나도 없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제자들이 마치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실망하셔서 좀 과장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사실, 마가복음 4:40 본문이 들어 있는 문맥이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해주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들의 현재 믿음의 상태를 표현한 마태복음 8:26은 병행구인 마가복음 4:40의 의미를 보충해주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가복음 본문이 예수님의 심리 상태를 표출한 것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서로 상반되게 보이는 이 두 본문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충적입니다.
누가복음 14:26도 이와 비슷합니다. “나를 따르는 자가 부모와 형제와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역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조건을 과장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4:26 이후에 나오는 비유와 앞 뒤 문맥이 이 말씀을 하게 된 예수님의 의도를 잘 알려줍니다만, 이것이 과장법으로서 예수님의 심리적인 상황과 관련되었다고 우리가 내린 결론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는 “미워하다“는 표현이 여럿 중에서 우선 순위에 두지 않는다는 우선 순위의 문제이지 증오나 무관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말라기 1:2, 3의 히브리적 표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요한복음 21:15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하신 “네가 이 사람들/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사랑의 비중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마 10:37).
한국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본문인 빌립보서 4:13의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의미가 문자적인 “모두“에 있는지 바울의 어떤 형편에 대한 그의 마음을 표출한 것인지는 독자들이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6. 본문의 내용을 자기말로 풀어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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