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미의 공시성과 통시성 | ||||
| 오광만의 성경해석 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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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만 교수/ 장신신학원
글은 말(speech)처럼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며 경험을 함께 나누는 의사 전달 수단입니다.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저자는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서 그것을 자기의 사상과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기호로 표시합니다. 이것은 연주가의 작품을 음반에 담아두는 것과 같습니다. 시청자는 음반의 부호를 읽어 확대시킬 수 있는 기계(오디오 세트)를 이용하여, 본인은 연주장에 없었지만 기계에서 나오는 음으로 현장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글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것도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글이라는 음반에 자기의 생각과 경험을 담아두면, 독자는 정당한 방법(기계)을 이용하여 글에 담긴 암호를 푸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호로 표기되는 글은 독자가 그것을 읽고 저자의 뜻을 파악할 수 있기 위해 독자와 저자가 공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대개 그것은 당대성을 띠기 마련입니다.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들은 동시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기호)를 사용하며, 그것을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글은 독자와 저자가 만나는 장입니다. 언어는 하나님의 생각을 당대에 정확하고 참 되게 전하기에 적당한 수단입니다. 그것을 성경 저자들은 각기 다양한 방법으로 전했습니다. 지휘자들마다 같은 곡을 달리 해석하고 연주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1. 의미의 공시성과 통시성
하지만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의미를 전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공시적 의미입니다. 단어 의미의 통시성과 통시성은 의미를 파악하는 관점이 서로 다릅니다. 통시적인 관점은 두 개의 관점을 사용하여 의미를 규정하려고 합니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앞으로 의미가 드러나게 될 것에 초점을 맞추는 전망적 관점과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에 가졌던 의미를 추적해내는 회고적 관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반면, 공시적인 관점은 하나의 관점만을 찾습니다. 즉 지금 글을 쓰는 저자가 의도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찾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지금 독자가 읽고 있는 글에서 단어의 의미는 현재 저자가 이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가 우선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어의 공시적 의미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단어는 그 단어가 과거에 어떻게 사용되었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보다는 “그 단어가 사용되는 바로 그 시점에 제한되는 현재의 가치와 또 사용되는 바로 그 순간에 적합한 특정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어의 의미는 저자가 글을 쓰고 말을 할 당시의 언어 상태의 지배를 받아 실제로 그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단어의 공시적인 의미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단어마다 의미의 변천 과정이 있고, 현재의 의미는 과거부터 쌓여왔던 의미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떤 글에 한번밖에 등장하지 않는 단어(하팍스 레고메나, hapax legomena라고 하는데)의 의미를 찾을 경우, 그 단어가 현재 이 문장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데 있어 통시적인 방법의 도움을 얻어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의 어떤 단어들의 의미를 풍성히 아는 데 있어서도 통시적인 방법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 저자들은 자기들의 어휘를 반드시 당대에 사용하던 것에만 국한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존의 성경을 직접, 간접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실제로 성경 저자들보다 먼저 쓰여진 성경에 있던 용어와 개념들이 성경 저자가 사용한 단어와 그 의미 또 문장의 내용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예를 들어, “언약“이나 “하나님의 나라“ 같은 단어들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어의 의미는 공시적인 면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2. 공시적 의미의 중요성
무슨 의미인지“를 말해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기에 사용된 단어나 문장이 현재 어떤 의미인지(공시적 의미)를 묻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받은 사람은 이런 말이 과거에 어떤 의미를 지녔었는지를 말하지 않고, 자기가 지금 마음속에 담고 있는 내용을 전합니다. 그런데도 상대방이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그게 무슨 말인데?“라고 질문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간에 의미 전달에 있어 약간의 모호한 점이 있어 이 말만으로는 정확한 의미 파악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B가 전임이 됐대“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을 한층 구체적으로 표현해주기를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기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다른 정보가 필요하다든가, 또는 이 표현이 의미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가능한 의미를 열거해보겠습니다.
하나, “응, 교수가 되었다는 말이야.“ 이것은 “전임“이라는 단어가 다른 단어와 함께 사용되던 것을 생략한 경우이고, 그 단어가 지칭하는 직언적인 직위를 언급하는 경우입니다.
셋, “이제 그의 뜻을 펼 수 있게 되었어. B가 하고 싶은 말, 그가 가진 교육 철학을 펼칠 기회가 된 것이야.“ 이것은 화자 또는 저자의 목적 또는 의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중에서 어떤 것이 화자가 의미한 것인지는 지금 그 말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라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이 두번째, 또는 세번째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면, 단지 이 문장에 사용된 단어의 뜻만을 가지고 그 말의 의미를 찾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의미(meaning)란 원 저자와 그가 염두에 둔 독자(청중)에게 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성경의 저자이시라면, 그 의미를 어떻게 찾아야 하겠습니까? 이것도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인간 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고, 단어의 신적인 의미와 인간 저자의 의미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의미는 인간 저자가 그 말을 할 때의 상황이나 언어적인 환경에 깊이 뿌리 박혀 있습니다.
3. 의미의 고정성과 유연성
다시 예를 통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야, 이건 독약이야“라는 말을 누가 했다고 합시다. 이 문장은 상대방을 부르는 “야“라는 감탄사와 “이것“과 “독약“ 두 단어를 연결하는 조사 “이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이 가리키는 것은 물건을 소개하면서 “이것은 뭐고, 저것은 뭔데, 이것은 독약이야“라고 안내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든지 달리 사용할 수 있으며, 각각의 경우 그 의미는 그 말을 한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제 친구 중에 커피나 드링크류의 음료를 마시는 사람에게, “이런 것은 몸에 해로우니 많이 마시지 말라“는 뜻으로 “이건 독약이야“란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그 친구는 “그런 독약(커피나 드링크류의 음료)을 어떻게 즐겨 마시니?“라고 빈정대는 투로 “이것은 독약이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어떤 사람이 잘 모르고 마신 음료에 독성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얘가 독약이 든 음료를 마셨으니 ‘얼른 119에 신고해‘“라는 의미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독약“이라는 등식이 암시하듯이 두 사물을 실제적으로 동일시할 때만 “이것은 독약이야“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으며, 각각의 경우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고집을 부리면서 “이것=독약“이라는 등식만을 주장한다면 그런 사람에게 이 표현은 고정된 의미 하나만을 지닐 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성만찬을 제정하시면서 하신 “이것은 내 몸이니라“(마 26:26)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 대답의 다양함에 따라 “이것은 내 몸이다“는 표현을 이해하는 것이 달랐습니다. 빵과 예수님의 몸을 실제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이해한 “화체설“(로마 가톨릭교)과 이 표현을 예수님의 몸이 빵에 공존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한 “공재설“(루터교) 그리고 이것이 예수님의 몸을 상징적으로 언급한 것이라고 생각한 “영적 임재설“(개혁교회)이 바로 그것입니다.
성경 해석에서 종종 발견되는 오류 중에서 이처럼 각 단어에는 하나의 의미만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단어는 여러 단어와 다양하게 결합됨으로써 다양한 의미를 표출하는 법입니다. 실제로 단어 사전은 한 단어에 비슷한 의미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전해줍니다. 오래 전에 예로 들었던 “육체“라는 단어도 좋은 예입니다. 마태복음 24:22의 “그 날들을 감하지 않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말에서 육체는 분명히 “사람“을 가리킬 것입니다.
반면에 로마서 9:8의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에서 “육신“은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5:7의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염라는 언급은 “세상에 사셨을 때염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로마서 8:13의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형질을 죽이면 살리니“에서 “육신대로“란 “죄의 성품을 그대로 따르면“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볼 때 단어의 의미는 유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장은 실제로 무엇인가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단어와 단어가 연결된 문장을 통해서입니다. 단어는 문장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어는 단지 문장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요소이며, 집에 비유하자면 집을 만들기에 필요한 벽돌인 셈입니다. 본문의 의미를 알기를 원하십니까? 단어 하나하나 보다는 문장에 관심을 더 기울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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